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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9 18:06 수정 : 2018.02.19 19:25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설 연휴 첫날 20대 간호사가 죽음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중 한 곳에 취직하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조사가 진행 중이고 병원 측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남자친구 등 주위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 중 하나인 ‘태움’이 자살의 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태움’은 주로 병원에서 선배들이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거나 길들이는 방식 중 하나로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군대 군기보다 더한 게 태움이라고 한다. 그래서 병원 간호사들은 재직 때만이 아니라, 퇴사 후에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태움이 어느 정도이기에 사람이 생명까지 버릴 정도인가. 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두렵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주로 교육과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인격모독이 많다. 병실 근무배치와 같은 인사상 불이익도 있다. 1년차 간호사들은 이때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 직장 내 인권은 부재했고, 조직문화는 비상식적임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간호사의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에 교육과정이나 업무는 매우 엄격할 수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병원의 간호사도 생명을 다룬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태움이 존재한다고는 듣지 못했다.

병원이나 보건복지부는 태움은 일부 사례라고 한다. 그런데 태움과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태움은 아니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매번 이런 태도들이 더 큰 문제다. 이미 2년 전 한 방송사에서 ‘간호사의 고백’이 방영된 이후 태움은 일부 개인이나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이고 주기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일부 병원은 조직적으로 나타난 곳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간호사 이직률은 16%나 된다. 대형 병원 간호사는 평균 4.5년 정도면 직장을 떠난다.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간근무와 같은 3교대 근무나 인력 부족 때문이다. 병원에 입사하여 처음 나이트 근무를 할 때는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눈물만 난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직업이다. 게다가 전문성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수준도 문제다. 간호사 이직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태움도 한몫한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의료노조 두 기관의 간호사 실태조사 결과 간호사 18%가 상급자로부터 폭언·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신체의 안전을 위협할 위험한 수준이다. 간호사의 노동과정 속에서 은폐된 인권 침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지난 2월1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73.3%나 되었고, 피해 경험 행위는 평균 10개나 되었다. 그럼에도 조직 내 특별한 대처는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가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제출되었으나 4년째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괴롭힘을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엄격하게 묻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평등법상 금지되는 차별행위의 하나로 간주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일의 과정에서, 또는 일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합리적인 행동 범주에서 벗어나 그에 따라 폭행, 위협, 해를 입거나 상해를 입는 모든 행위, 사건 또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부터 직장까지 인권과 일터의 민주주의는 가르치지 않는다. 조직에 순응하는 인간으로만 사회에 내보낸다. 노동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신체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우리도 정규 교육과정에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위한 노동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권리 없는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한 법학자의 말처럼, 병원이라는 일터에서 간호사의 인권은 무엇인지 반문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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