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지난 10여년 동안 국민은 ‘법인화’라는 실체 없는 환상 탓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퇴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아카이브 전문기구인 연구센터 개관이라는 역대급 감동도 있었지만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부실투성이가 아닐 수 없었다. 온통 비정규직으로 가득 찬 모습은 저 법인화의 결과다. 과천관과 덕수궁관에 서울관까지 3관 체제가 되어 외형은 복잡하게 확대되었지만 학예 및 전시인력에서 비정규직이 압도해 조직의 불안정성이 심각하게 심화되었고 전문성의 훼손을 경험해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문화예술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법인화 추진 우선대상기관으로 지정되었다. 명분은 ‘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 제고’였다. 그리고 이후 정부는 18대, 19대 국회에 집요하리만큼 계속해서 법인화 법률안을 제출해왔다. 그러나 번번이 자동폐기되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지루한 과정은 되풀이되었다. 그러는 사이 미술관은 내상이 깊어만 갔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법인화’란 간단히 말해 미술관을 민간기관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사실은, 법인 미술관의 핵심인 이사회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켜 놓고서 그 이사 임면권을 문체부 장관이 갖는다는 규정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이사들에게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지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외 유수 미술관들의 이사는 주어진 권한에 걸맞게 매년 막대한 기부를 함으로써 권한에 걸맞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런 장치조차 없는 법인화를 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국립미술관은 사립미술관과 달리 해당 국민국가 공동체의 영혼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예술가가 탄생시킨 절정의 예술품을 수집, 소장하고 연구하여 그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 또한 국립미술관은 그 연구를 토대로 작품을 전시, 연출함으로써 세계와 교류하여 외교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지난 2001년 국립 미술관, 박물관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전면 법인화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 작품 구입 및 연구, 교육 기능의 후퇴가 심화되었다. 또한 유능한 인력이 빠져나가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전시를 주도하지 못해 그 폐해가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근래 아시아 미술계에서 일본 국립미술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어난 실패 사례를 지켜보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 들어 국립미술관 법인화는 이미 동력을 잃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인화라는 근거 없는 환상은 먼 일본이 아니라 바로 서울에 있는 예술의전당이 살아 있는 실제 사례다. 법인화 이후 재정 확충을 위하여 예술의전당이 주력하고 있는 상업적인 대관사업들이 낳은 결과는 공공성과 예술성의 상실만이 아니다. 예술기관으로서 전문성의 상실과 효율성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 모습이 아마도 법인화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10년을 끌어온 법인화 논란의 장기화로 미술관은 행정안전부에 의해 정원 동결이 계속되면서 비정규직 기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수 인력 확보는 요원해졌으며 조직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 운영의 일상화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의 난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법인화 추진은 종식되어야 한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성장을 저해해온 10년간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부터 미술관을 해방시켜야 한다. 2018년 청주관 개관으로 완성되는 4관 체제와 2019년 맞이할 개관 50주년의 역사를 풍요롭게 일궈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전문성과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간을 지키는 것이 국립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에 일치하는 최상의 길일 것이다. 지금 저 법인화라는 덫을 걷어낸다면 머지않아 미술관 구성원들은 소통과 공감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면 |
[왜냐면] 법인화의 덫에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 최열 |
최열
미술평론가 지난 10여년 동안 국민은 ‘법인화’라는 실체 없는 환상 탓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퇴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아카이브 전문기구인 연구센터 개관이라는 역대급 감동도 있었지만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부실투성이가 아닐 수 없었다. 온통 비정규직으로 가득 찬 모습은 저 법인화의 결과다. 과천관과 덕수궁관에 서울관까지 3관 체제가 되어 외형은 복잡하게 확대되었지만 학예 및 전시인력에서 비정규직이 압도해 조직의 불안정성이 심각하게 심화되었고 전문성의 훼손을 경험해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문화예술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법인화 추진 우선대상기관으로 지정되었다. 명분은 ‘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 제고’였다. 그리고 이후 정부는 18대, 19대 국회에 집요하리만큼 계속해서 법인화 법률안을 제출해왔다. 그러나 번번이 자동폐기되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지루한 과정은 되풀이되었다. 그러는 사이 미술관은 내상이 깊어만 갔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법인화’란 간단히 말해 미술관을 민간기관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사실은, 법인 미술관의 핵심인 이사회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켜 놓고서 그 이사 임면권을 문체부 장관이 갖는다는 규정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이사들에게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지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외 유수 미술관들의 이사는 주어진 권한에 걸맞게 매년 막대한 기부를 함으로써 권한에 걸맞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런 장치조차 없는 법인화를 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국립미술관은 사립미술관과 달리 해당 국민국가 공동체의 영혼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예술가가 탄생시킨 절정의 예술품을 수집, 소장하고 연구하여 그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 또한 국립미술관은 그 연구를 토대로 작품을 전시, 연출함으로써 세계와 교류하여 외교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지난 2001년 국립 미술관, 박물관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전면 법인화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 작품 구입 및 연구, 교육 기능의 후퇴가 심화되었다. 또한 유능한 인력이 빠져나가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전시를 주도하지 못해 그 폐해가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근래 아시아 미술계에서 일본 국립미술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어난 실패 사례를 지켜보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 들어 국립미술관 법인화는 이미 동력을 잃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인화라는 근거 없는 환상은 먼 일본이 아니라 바로 서울에 있는 예술의전당이 살아 있는 실제 사례다. 법인화 이후 재정 확충을 위하여 예술의전당이 주력하고 있는 상업적인 대관사업들이 낳은 결과는 공공성과 예술성의 상실만이 아니다. 예술기관으로서 전문성의 상실과 효율성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 모습이 아마도 법인화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10년을 끌어온 법인화 논란의 장기화로 미술관은 행정안전부에 의해 정원 동결이 계속되면서 비정규직 기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수 인력 확보는 요원해졌으며 조직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 운영의 일상화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의 난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법인화 추진은 종식되어야 한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성장을 저해해온 10년간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부터 미술관을 해방시켜야 한다. 2018년 청주관 개관으로 완성되는 4관 체제와 2019년 맞이할 개관 50주년의 역사를 풍요롭게 일궈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전문성과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간을 지키는 것이 국립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에 일치하는 최상의 길일 것이다. 지금 저 법인화라는 덫을 걷어낸다면 머지않아 미술관 구성원들은 소통과 공감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술평론가 지난 10여년 동안 국민은 ‘법인화’라는 실체 없는 환상 탓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퇴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아카이브 전문기구인 연구센터 개관이라는 역대급 감동도 있었지만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부실투성이가 아닐 수 없었다. 온통 비정규직으로 가득 찬 모습은 저 법인화의 결과다. 과천관과 덕수궁관에 서울관까지 3관 체제가 되어 외형은 복잡하게 확대되었지만 학예 및 전시인력에서 비정규직이 압도해 조직의 불안정성이 심각하게 심화되었고 전문성의 훼손을 경험해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문화예술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법인화 추진 우선대상기관으로 지정되었다. 명분은 ‘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 제고’였다. 그리고 이후 정부는 18대, 19대 국회에 집요하리만큼 계속해서 법인화 법률안을 제출해왔다. 그러나 번번이 자동폐기되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지루한 과정은 되풀이되었다. 그러는 사이 미술관은 내상이 깊어만 갔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법인화’란 간단히 말해 미술관을 민간기관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사실은, 법인 미술관의 핵심인 이사회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켜 놓고서 그 이사 임면권을 문체부 장관이 갖는다는 규정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이사들에게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지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외 유수 미술관들의 이사는 주어진 권한에 걸맞게 매년 막대한 기부를 함으로써 권한에 걸맞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런 장치조차 없는 법인화를 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국립미술관은 사립미술관과 달리 해당 국민국가 공동체의 영혼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예술가가 탄생시킨 절정의 예술품을 수집, 소장하고 연구하여 그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 또한 국립미술관은 그 연구를 토대로 작품을 전시, 연출함으로써 세계와 교류하여 외교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지난 2001년 국립 미술관, 박물관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전면 법인화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 작품 구입 및 연구, 교육 기능의 후퇴가 심화되었다. 또한 유능한 인력이 빠져나가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전시를 주도하지 못해 그 폐해가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근래 아시아 미술계에서 일본 국립미술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어난 실패 사례를 지켜보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 들어 국립미술관 법인화는 이미 동력을 잃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인화라는 근거 없는 환상은 먼 일본이 아니라 바로 서울에 있는 예술의전당이 살아 있는 실제 사례다. 법인화 이후 재정 확충을 위하여 예술의전당이 주력하고 있는 상업적인 대관사업들이 낳은 결과는 공공성과 예술성의 상실만이 아니다. 예술기관으로서 전문성의 상실과 효율성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 모습이 아마도 법인화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10년을 끌어온 법인화 논란의 장기화로 미술관은 행정안전부에 의해 정원 동결이 계속되면서 비정규직 기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수 인력 확보는 요원해졌으며 조직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적 운영의 일상화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의 난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법인화 추진은 종식되어야 한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성장을 저해해온 10년간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부터 미술관을 해방시켜야 한다. 2018년 청주관 개관으로 완성되는 4관 체제와 2019년 맞이할 개관 50주년의 역사를 풍요롭게 일궈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전문성과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간을 지키는 것이 국립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에 일치하는 최상의 길일 것이다. 지금 저 법인화라는 덫을 걷어낸다면 머지않아 미술관 구성원들은 소통과 공감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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