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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2 18:30 수정 : 2018.01.22 19:04

이호석
싱어송라이터

동료 음악가 중 한 명이 창작준비지원금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인을 위한 지원금 제도라 한다. 금액도 일인당 삼백만원이나 되는 적지 않은 돈이다. 조건도 어렵지 않았다. 일 년 이내에 예술 활동을 했다는 공식 자료만 있으면 되고 생활이 어려운 영세 예술가임을 증명하면 된다. 나는 자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가난함’에 자신 있었다. 단칸 옥탑방에 재산도 없는데다 근 2년은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지인에게 지원금 소식을 듣는 즉시 받겠다 싶었다. 내가 받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받을 수 없다.

‘가구원 소득합계 75% 이하’, ‘신청인이 등재된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00% 또는 150% 이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신청 자격은 이러하다. 나는 종합 소득이 사백만원 남짓이라 소득합계가 75% 이하인 건 확실했고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가 걸렸다. 이사 후 주소를 옮기지 않아 그동안 건보료를 내지 않았다. 이참이다 싶어 살고 있던 옥탑방으로 전입 신고를 했고, 곧 건보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거기엔 놀랍게도 4만원이 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지원금 신청 기준을 웃도는 보험료였다.

믿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난함’에 자신 있는 내가 창작준비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다니. 거기에다 이제 4만원이 넘는 돈을 매달 꼬박 내야 한다니. 나랏돈 삼백만원 받으려다 이게 무슨 꼴이람. 분통 터진다.

혹시 나는 가난하지 않은 걸까? 아니다. 역시 난 가난하다. 그렇다면 왜 수입도 별로 없는 내가 그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걸까? 건보료는 지역 가입자와 직장 가입자로 구분해 산출한다. 직장 가입자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회사에 근무하는 경우, 회사와 본인이 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한다. 이때는 오로지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정해진다. 나는 온전한 직장이 없으므로 자동으로 지역 가입자가 된다. 지역 가입자 보험료는 계산이 유난스럽다. 성별, 나이, 자동차, 재산, 소득으로 나누어 각각 점수를 매기고 합산해 보험료를 산출하는데, 항목도 점수 산정 기준도 납득할 만한 것이 없다. 친절하게도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아주 깊숙한 곳에 건보료를 계산하는 시스템이 있다.

일단 39살 남자만으로 건보료를 계산해 봤더니 1만3370원이 나왔다. 난 39살 남성으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1만3370원을 내야 한다. 갑자기 숨이 가쁘다. 재산 항목을 살펴봤다. 토지, 건물분, 주택분, 전세 보증금, 월세 보증금. 이상 다섯 개다. 월세 보증금은 월세액 기입란까지 마련되어 있다. 전월세 보증금은 보호도 제대로 안 해주면서 월세까지 자세히 적어 내라니 기가 찬다.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적어 계산했다. 합쳐 2만9320원이 나온다. 소득은 아직 넣어보지도 않았다.

이명박씨가 2만원대의 건보료를 내고 있었다는 통탄할 뉴스를 봤다. 막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도 나처럼 옥탑을 전전하며 살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보험료를 계산해 보았다. 2만원대 보험료가 가능하려면 그의 특기로 주목받는, 주인 없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기가 그 회사에 사원으로 취직하면 된다. 그리고 월급으로 60만원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정확히 2만100원의 보험료가 본인 부담으로 책정된다. 이로써 아무런 문제 없이 사업가이자 자산가이자 창조적 예술가 이명박씨의 2만원대 보험료가 가능하게 된다.

건강보험료는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이 보험료를 더 적게 낼 수 있고, 정규직보다 사업가, 자산가가 보험료를 더 적게 낼 수 있는 정책상 구멍이 있다. 아니 구멍이라기엔 너무 커서 누구나 다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싱크홀 정도라 하자.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세금을 내는 담뱃값은 오히려 양반이다. 수입이 적어도, 생활이 어려워도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악랄한 제도가 어디 또 있을까. 게다가 세습적이기까지 해, 변변찮은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난한 이들이, 그 아들딸들이 생활비를 쪼개 보험료를 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2014년 병환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세 모녀에게 건강보험료 5만원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도 짐작이 간다.

없는 사람들에게 한 달에 1, 2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이런 일을 처리하는 나라님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4만원짜리 점심을 먹어서 그런가. 그래서 우리가 이 정도 먹으니 서민들은 만원짜리 점심 정도는 먹으려니 하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포퓰리즘을 논하는 그들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민생이 들어 있기나 한 건지. 투표용지 한장엔 바르르 떨면서 만원짜리 한장은 떨어진 나뭇잎 정도 여기는 그 손이 서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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