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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2 13:35 수정 : 2018.01.12 13:35

김영희/마트 노동자

지난주 티브이(TV) 홈쇼핑에서 구입했던 물건이 경비실에 보관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퇴근 후 밤 11시경 경비실에 들렀더니, 문이 잠기고 불도 꺼져 있었고 내일 새벽 다섯 시까지 휴식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경비가 지키라는 아파트는 지키지 않고 불까지 끄고 잠을 자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깊은 밤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근무하니 이해하기로 했다.

오늘은 오후 출근이라 집안 정리와 저녁 반찬을 만들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니 12시가 넘었다. 택배를 찾아놓고 출근해야겠기에 경비실을 찾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경비실 문이 잠겨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황당했다. 경비실 문 앞에 ‘휴식시간 : 중식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석식 18시부터 19시 30분까지, 야간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라는 안내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근무 시간이 늘 일정하지 않은 터라 매번 허탕 치는 택배물 수령에 화가 났다. 경비가 왜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형마트 입사 8년 차 계산원이다. 마흔 넘어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대기업에서 할 수 있어 무척 자랑스러웠다. 몇 년 근속해도 급여 변동이 없는 것이 부당한 줄도 몰랐고, 직급별 차별조차 깨닫지 못했다. 고객의 부당한 갑질과 관리자의 편견쯤은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작년 봄 어느 목요일쯤 일이 생각난다. 계산대에서 일하는데 한 육십 대쯤 보이는 여자 고객이 소량을 계산했고 육칠만 원이 나왔다. 금액이 너무 큰 듯해서 혹시 실수했을까 싶어 모니터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더니 유기농 견과류의 가격이 높았다. 계산이 끝나고 한 오 분쯤 지났을 때 그 고객이 되돌아와서 계산한 물건을 던지고 화를 내며 막말을 시작했다.

“니 계산 빨리해라. 오늘 내 그냥 안 있을 끼다.”

“고객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지금 계산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빨리 계산이나 해라. 이 가시나가 어디서 이딴 짓이고 빨리해!”

계산대에서 오 분은 많은 고객이 계산하고 가는 시간이다. 한 분 한 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고객은 계산 중 나도 이상해서 살폈던 경우라 기억을 했다. 항상 같은 품목을 계산하는데 오늘은 일부러 양도 적은 것을 골랐는데 두 배나 비싸게 계산이 되었단다. 계산 중이라 기다려 달라는 응대만 연신하며 서둘렀지만, 워낙 많은 양이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년이 나이 꽤나 쳐무가 도둑질이나 하고, 이런 식으로 얼마나 해 먹었노. 시끄럽고, 이 가시나가 멀쩡하게 생겨가, 너그 사장도 니가 도둑년인 거 아나. 더럽구로 이기 무슨 짓이고. 이렇게 사니 이런 데 서 있지. 니 새끼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추접은 년…”

이렇게 쉴 새 없이 욕설을 해댔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욕하지 마세요. 고객님은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계산하셨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어도 도둑질은 못 한다”며 하던 계산을 멈추고 영수증과 물건을 대조했지만, 계산 착오는 한 곳도 없었다. 고객이 유기농을 가져왔기에 양이 적어도 가격이 두 배나 나온 거라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쌍욕을 하며 삿대질에 고성을 질렀다. 요즘 계산대에는 ‘고성이나 폭언을 하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A4 크기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것을 가리키며 고객을 고소할 수도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더니, 살짝 수그러들긴 했지만 “지랄하고 있네”라며 물건을 챙기며 영수증을 돌려달라고 했다.

욕설한 것, 도둑 취급한 것, 삿대질한 것, 물건 던진 것,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준 것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이기 뭐라 카노, 영수증이나 내놔! 그래 니 잘났네, 영수증 내놔! 요새는 이런 데서도 할 말 다 하네 웃겨! 알았다, 알았다, 미안하다, 됐째? 미안하다 했으면 됐지 고객한테 니 너무 한 거 아이가. 빨리 내놔라, 내 바쁘다. 니 자꾸 이라면 내 진짜 가만히 안 있는다. 고객센터 갈 끼다”며 되레 억지를 부렸다. 너무나, 너무나 화가 났다. 절대 울지는 않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에 더 화가 나서 주먹 쥔 두 손까지 떨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핸드폰을 들고 신고하는 시늉을 했더니, “미안하다, 미안하게 됐다. 이렇게 비쌀 줄 내가 알았나.” 이러는 거였다. “왜 반말을 하느냐. 반말하지 마시라. 나도 내일이면 오십이고 나이와 상관없이 그 누구도 내게 반말할 권리는 없다”라며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는데 들고 있는 핸드폰마저 떨고 있었다. 고객은 “모르고 그랬지만 미안해요. 됐지요?”라며 영혼 없는 사과를 했다. 그 사이 관리자와 보안도 달려왔다. 그 고객은 하소연하듯이 관리자에게 말했지만, 관리자가 “욕설과 고성과 폭언을 우리 직원에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자 도망치듯이 물건을 챙겨 떠났다. 관리자의 조치로 근무지를 벗어나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2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다수의 고객이 “사과받으세요. 꼭, 사과받으세요.”, “사과하세요. 너무 하시네!”, “요즘도 저런 인간이 있어?”, “고발해버리지 왜 안 하세요?”라는 응원을 해줘 힘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부터 다 지켜보고 있었어. 사정을 다 아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객한테 그러면 안 되죠.” 하고 인상을 썼던 고객은 고객센터에 항의까지 하고 갔단다.

오늘은 계산대에서 모바일 쿠폰과 관련해서 고객과 언쟁이 있었다. 수십 가지가 넘는 행사와 다양한 할인 혜택은 고객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계산대에서 업무처리가 지연되기도 한다. 고객은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업무 숙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버벅거린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아무리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일에는 규칙이 있고 순서가 있다. 그러나 계산대에 서면 고객들은 ‘계산 절차상의 정당한 요구를 지시라 하고 고객을 가르친다며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말은 그만하고 침 튀니 계산이나 똑바로 해라’는 등 계산원이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폭언을 한다. 근무하는 8년 동안 경찰서를 수백 번도 더 찾았다. 마음속으로만.

왜, 사람들에게 그런 의식이 생겼을까? 수탈의 역사에서 터득한 생존 본능이 우리를 비굴하게 했고 그 비굴한 자의식이 나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 못된 시어머니 같은 일 말이다. 그 저변에는 무조건 친절을 강요하는 ‘기업의 잘못된 서비스 마인드’가 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2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지금은 당당히 표현하고 요구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잣대와 편견은 아직도 여전하다.

2015년 10월, 근무지에 노동조합 지부를 설립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지부를 설립하는 과정까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 같아 억울해서 사직서도 내지 못하고, 가족에게 하소연도 못 하고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다. 그 당시 사건은 너무 아파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심장이 뛰고 멀미가 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부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적은 급여는 변함이 없지만 크게 비용지출 없는 인간적인 부분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2006년 대법원에서 경비원의 식사·수면 시간도 근로 간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했단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기 시간이나 휴식·수면 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자유롭게 보장된 시간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시간이라면 근로 시간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단다. 당당하게 권리를 찾고 휴식시간임을 알리고 불까지 끄고 잠을 자는 경비아저씨들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출근 전에 경비실을 찾으며 가졌던 이기적인 마음이 몹시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다. 누군가의 근로로 편리를 제공 받았다면, 그분의 근로에 대한 부당한 요구와 편견을 버려야 하고 존중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도 한발만 나서면 부당함과 편견에 아파하면서, 타인이 당하는 부당함과 편견은 아랑곳없이 내가 불편하다고 시정을 요구하고 불만을 표현했던 지난 일들이 부끄럽다. 원칙은 언제나 항상 지켜져야 한다. 누군가 불편하여 원칙을 벗어나는 행위가 인정되는 것은 배려이다. 배려에 대하여는 감사해야 하고, 다음에 누군가에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한다.

일하면서 정말 힘든 것은 업무의 강도도 아니고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도 아니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밴드도 붙이지 못하고 아물 때까지 생으로 아파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함께한 오늘, 지부 설립 2주년이 되는 과정에서 갈등도 번민도 많았지만, 당당해진 내가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함께, 그리고 다 같이 걷는 세상을 오늘도 꿈꾼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주최한 ‘2017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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