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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1 17:41 수정 : 2018.01.11 17:41

함은선/방송작가

“막내야, 커피 좀 타다 줄래?”

2002년 모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들어간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내 이름은 ‘막내’였습니다. “막내야, 이것 좀…”, “막내야, 나 회의에 늦는다고 전해줘” 등 하루에 몇 번이나 불리는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이름이 불러졌습니다. 방송작가는 보통 메인작가-서브작가-막내작가로 구분됩니다. 서브작가는 대개 막내작가 과정을 거치고 소위 ‘입봉’한 후의 작가들을 의미하는데, 입봉이란 본인이 프로그램 한 꼭지를 기획하고 원고 쓰는 것을 모두 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시작이었습니다. 뭐 그래도 좋았습니다. 하루 15시간도 더 넘게 일했지만 방송 말미에 올라가는 스텝 스크롤에 -그나마도 긴장하고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하는 것이었지만- ‘자료조사 000’으로 이름이 올라가는 그 순간, 한 주간의 피곤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섭외 전화를 하고 또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도 방송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아주 가끔, 출연자들에게 ‘고맙다’라는 이야기라도 들을라치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거든요.

58만200원.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만 주 6일, 그리고 집에서 주 1일 그렇게 주 7일 근무하며 한 달에 받은 월급입니다. 한 달 60만 원에 3.3퍼센트 세금을 뺀 금액이죠. 연차가 많은 작가들은 한 회당 얼마씩의 금액을 받지만 막내 작가의 경우는 월급제로 계산을 했습니다. 많은 제작사들이 그래왔고 또 지금도 그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분명 한 달 월급으로 돈을 받는데 왜 4대 보험은 안 되는 걸까. 방송작가를 하기 전 2년여 동안 일했던 출판사에서는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계약서라는 것을 쓰고 의료보험 혜택이라는 것도 받았거든요. 일한 대가를, 그것도 월급이라는 단위로 정산을 해주는 경우는 모두 4대 보험 적용 대상인 줄 알았습니다.

“작가들은 프리랜서잖아. 4대 보험이 어딨어?”

“그래도 나는 월급으로 받잖아”

“월급? 그게 뭐?”

당시 외주제작사 총무팀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는 뭘 그런 걸 다 묻느냐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4대 보험을 물어보는 작가들은 없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서 말이죠.

쉼 없는 날들은 계속되었고 몇 개월을 더 다니다가 결국 하혈을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끝나겠지 싶었던 하혈은 한 달 넘게 이어졌고 결국 프로그램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 대표에게, 또는 제작 팀장에게, 또 선배 작가에게 이야기를 해도 어느 누구도 “몸이 회복되면 다시 돌아와”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방송 제작 특성상 단 하루도 누군가가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병가’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죠. ‘스트레스성 하혈’이라는 병원 진단. 병원비가 많이 들었지만 계약서 한장 없었으니 그 비용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 58만 200원씩 받던 월급 통장에서 말이죠.

유급 휴가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무급 휴가조차도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는데 그것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외주제작사에 고용되어 있던 피디들의 경우는 비록 무급 휴가일지라도 다른 피디들이 그 역할을 대체해 주는 것을 목격했으니까요. 아프게 되면 병가가 아닌 퇴사를 결정해야 하는 곳, 그것이 프리랜서의 현실이었습니다. 아, 물론 엄밀히 말하면 ‘퇴사’는 아니군요.

“함 작가는 몸매가 참 좋네.”

“회식 끝나고 집에 가서 한잔 더 할까?”

서브작가가 된 이후에는 경제적인 문제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이 더 이상 호사가 될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서브작가가 된 이후는 더 많은 것들이 다가왔습니다. 프로그램 제작비가 줄었다며 아침방송 한 꼭지가 폐지되고, 덩달아 졸지에 실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임금이 한두 달 늦어지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외주제작사 대표가 제작비를 횡령하고 도주해 수개월 동안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내야 되는 경험도 했죠.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청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적금 한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메인작가가 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돈 문제, 뭐 그것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치킨 시켜먹을 거, 두 달에 혹은 세 달에 한 번 시켜먹으면 되는 거니까요. 사무실에서 생수를 받아다가 집에서 먹으며 그렇게 생활비를 줄이면 되는 거니까 말이죠. 더 큰 문제는 ‘관계’였습니다. 한마디로 갑질이었던 거죠. 방송사 CP(책임프로듀서 Chief Producer)의 성희롱에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제기라도 할라치면 당장 프로그램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갈 때에도 ‘이상한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머리가 꽤 굵어져 어떻게든 대응을 했겠지만 당시에는 너무 작았습니다. “저 잠시 화장실…” 하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작가의 몫이 되었습니다. 행여나 화면 하나 잘못 나가서 시청자 항의라도 들어오면 그것은 온전히 작가들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아, 그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군요. 메인작가가 된 이후 말이죠? 네 지금도 그렇습니다.

“메인작가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협찬을 따와야 하지 않을까?”

음향 장비가 빵빵하게 갖춰진 외주제작사 사장실은 처음 들어가 봤습니다. 처음 본 와인 냉장고가 참 인상적이었던 곳이었죠.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참으로 강했던 멘트, ‘협찬’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뀐 후 방송사들의 제작비 절감은 현실이 되었고, 때문에 외주제작사에게 암암리에 협찬 강요를(지금은 대놓고 하고 있다죠) 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으니, 사실 대기업에 전화를 돌리면 협찬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협찬 금액이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제작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작진들에게 협찬을 따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영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이유를 대며 프로그램을 그만뒀습니다. 그게 2008년의 일입니다.

2015년 무렵이었습니다. 인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가 대표로 있는 방송사에서 일할 때였죠.

“팀장님, 우리는 왜 계약서를 안 씁니까?”

“계약서? 계약서 쓴 작가들은 아무도 없어.”

“그래도 계약서를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자들은 계약서를 쓰기는 하지. 하지만 그들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은 내용일 텐데. 그리고 계약서 이야기하는 작가는 처음이야.”

이미 프로그램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몇몇 작가들이 갑작스레 해고 통지를 받은 이후였고, 나 역시도 당시 불합리한 제작 조건을 통보받은 이후였습니다. 그래서 면접 때부터 가슴에 묻어둔 질문을 7개월 만에 어렵게 꺼내놨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위치였던 것이죠.

결국 그 프로그램도 그만뒀습니다. 인권위에 문의를 했지만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압력 아닌 압력에 결국 글을 내려야 했고 두 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수개월 후 또 다른 후배가 “언니, 저 잘렸어요”라며 울부짖으며 전화를 할 때까지 그 방송사의 일에 대해서도 잊고 살았습니다. 최근 들어 긍정적 이미지로 그 방송사가 언급이 되고 있지만 글쎄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방송작가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나름대로 꽤 많은 꿈을 꿨습니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자, 우리 사회 부조리한 면들을 알리고 바꿔나가자.’ 하지만 정작 방송작가들이 소외된 이들이 되고 사회 부조리의 현장 속에 있더군요. 계약서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프로그램과 운명을 함께하며 경제적인 문제로 삶을 허덕이는 직업. 그것이 방송작가입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앉아 일해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근직’이 아니니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심지어 매일 출근을 해도 노동자는 아니랍니다. 몇 해 전 후배 두 명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유산을 경험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병가가 아닌 자발적 퇴사였습니다. 아, 엄밀히 퇴사가 아니라 프로그램 하차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말입니다.

프리랜서. 참으로 멋진 단어입니다. 조직이나 회사에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일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방송작가 앞에 붙지만 실상은 고용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일하면서 독박 책임을 지는 위치입니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인 거죠.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가끔 듣는 질문에 그럼에도 늘 당당히 말합니다.

“저요? 저는 비정규직 방송작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주최한 ‘2017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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