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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0 18:03 수정 : 2018.01.15 11:02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

현 정권은 북한 핵문제를 비롯하여 외교, 경제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안정된 정치를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은 이상 우선순위를 매겨 처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핵과 관련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조차 뒷전으로 돌리는 듯한 자세가 있다. 즉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고속로” 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인간이 옆에서 순식간에 즉사하는 강력한 방사능을 가진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가 현재 약 1만5000톤이 쌓여 있고, 또 매년 750톤 정도가 늘어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방식으로는, 지하 수백미터의 최종처분장에 수십만년간 보관하는 “직접처분 방식”과 파이로프로세싱법의 건식 재처리 방식으로 일부 재이용 물질을 추출한 뒤 그 물질을 새로운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SFR)에서 이용하고, 재처리 공정의 나머지는 지하의 최종처분장에 보관하는 “재처리 방식”의 두가지가 있다.

하지만 재처리는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술이므로,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을 통해서 한국의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2015년 개정협정으로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하고 있는 기초공정만 실제의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것으로, 핵비확산성문제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을 분리하는 핵심공정은 모의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의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핵심공정은 2020년까지 미국에서만 한·미 공동연구로 실시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 연구에만 약 20년간 6700억원가량의 연구비가 투입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 상태로서, 국외는 물론 국내 원자력 학계 내에서도 연구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연구는 국내 핵마피아들의 개인적 친분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있다. 즉 연구의 실현 가능성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확대·유지가 우선이고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즉 미국의 재처리 관련 연구비의 부족을 지원하면서, 핵마피아의 입지만을 강화시켜주는 형태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자세는커녕, 연구 사업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그저 “재검토하라”는 식의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과 같은 결정인 것이다. 추진 당사자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모든 판단을 맡긴 채, 나 몰라라 하는 무감각한 타성(?)에는 할 말을 잃을 정도이다.

심지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급조된 사용후핵연료 연구개발 관련 재검토위원회는 반대 쪽에 “연구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이른바 “악마의 증명”을 위한 방대한 근거자료를 겨우 8일 만에 제출하라는 무지막지한 요구조차 하고 있다.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과 수백명의 인력을 가진 추진파와, 무보수의 개인적인 연구자 또는 시민단체가 같은 환경인가? 지속적인 연구를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에 필요한 들러리를 요구하는 형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의 리스크는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와도 관련된 중차대한 “국가적 문제”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에 관한 논의보다 더 중요한 안건이며, 국가 존망을 좌우할 문제인 만큼 대통령 직속으로 대국민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솔한 판단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장기적인 시각에서 신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재검토위원회 방식을 유지한다면, 연구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의 피해 주민 및 국민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대 정권이 제대로 챙기지 않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에 대해 현 정권에만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도 큰 탓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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