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일자리 위원회’에 보내는 고언 / 황광우 |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되는데, 우리 집은 한숨이다. 딸아이가 한숨이니 애엄마가 한숨이고, 애엄마가 한숨이니 나도 한숨이다. 아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고 싶다. 그런데 이게 청탁이란다. 나는 부정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도 답답하여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보았다. 여전히 내 아이에겐 희망이 없다. 공공부문에서 81만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 이외엔 보고서의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 1년 가까이 ‘일자리위원회’가 한 일이 이 리포트 한 편이라니….
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빌어왔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마침내 대한민국이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아, 이 가정은 너무 끔찍하다. ‘그녀’가 청와대에 가는 날, 우리는 흐느끼지 않았던가?
나는 불길한 조짐을 본다. 뉴스에 나오는 청와대 사람들은 봄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밝다. 내가 읽은 ‘일자리 로드맵’에도 시대의 고뇌가 없었다. 고통당하는 젊은이의 눈물이 없고, 부모의 애간장이 없다. 숫자뿐이다. 이 리포트 작성을 지휘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말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속도로를 완성하였다. 이제 차만 지나가면 된다.”
고속도로를 완성하였단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우리가 당면한 청년실업의 양과 구조에 대해 알고 하는 소린가? 지금 ‘사실상의 청년 실업자’는 400만명에 달한다. 심각한 것은 이 청년 실업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자리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을 ‘일자리 늘리기 리포트’에 집어넣었다.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빅 데이터,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 이런 것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자리를 감축하기 위한 것이다. 기술혁신의 본질은 노동의 감축에 있다. 이 부위원장은 경제학 교과서를 읽지 않았나?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는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다. 아테네 빈민을 위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그 신전이 세계 문화유산 1호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댐을 만든 것은 정부의 돈이 남아서가 아니었다. 망가진 경제, 창궐하는 실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새로운 관행(New Deal)에 도전하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노동력은 매일 폐기된다. 내 딸아이의 삶은 그렇게 매일 폐기되고 있다. 그렇게 매일 400여만명의 청년 노동이 폐기되고 있다!
나는 상상한다. 폐기되고 있는 이 노동력을 창조적인 활동으로 전환하자. 청년 노동을 활용하여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자. 지금은 한국판 뉴딜을 일으킬 때이다. 일자리위원회가 제기해야 할 것은, 나라의 관행을 바꾸고,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대담한 상상과 열정이 아닐까?
일자리위원회는 나라의 운명을 걸머지고 있는 위원회다.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탑이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을 빼려 하는 장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왜 촛불인가?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촛불이다.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 문재인의 일자리위원회에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고대하는 것은 우리의 과욕일까?
황광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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