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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03 18:03 수정 : 2018.01.03 20:51

좁은 도로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소방차의 화재진압이 늦어졌다는 얘기는 수십년 전부터 들어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고질적 문제를 고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불법주차를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불법주차를 일삼는 운전자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법주차 말고는 달리 주차할 곳이 없고, 불법주차를 하더라도 단속되지 않는다면 불법주차에 대한 시민의식은 약화된다. 선진국에서 주차질서가 확립된 이유가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공공이 그런 의식이 만들어지도록 적극 개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차고지 증명제를 통해 주차할 곳이 있어야만 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일본도 단독주택지 도로가 좁지만 불법주차를 찾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소유의 주차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집 근처 민간 혹은 공영 주차장을 월 단위로 임차해서 차고지를 증명해도 된다. 이는 차를 소유하려면 주차비용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으로 연결된다.

파리, 런던 등 유럽 도시도 공공이 노상 주차면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특정 거주자만 독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용 주차면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같은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하는 공유 주차면만 있다. 누군가 운 좋게 전용 주차면을 받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고 주차면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법주차는 별로 없다. 공무원과 동네 주민들이 끊임없이 불법주차를 단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가 있으면 별도의 공공이나 민영 주차장을 임차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우리도 공공이 나서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단독주택지구에 주차장 공급을 늘리자. 주차장이 현재보다 늘어나야 불법주차가 해소될 수 있다. 특히 야간에 주차할 공간이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 새로운 주차장 조성도 필요하지만 주변 상가 건물 주차장을 야간에만 주민을 위해 개방할 수도 있다. 둘째, 모든 주차장에 이용료를 부과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공짜 주차장은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어야 불법주차도 줄어든다. 누군가는 공짜로 주차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 불법주차는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퍼진다. 우리나라의 거주자우선주차제는 이런 면에서 문제다. 일부 사람들만 저렴한 가격에 전용 주차면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싼 주차비를 내고 먼 곳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날 수 없다.

셋째, 엄격한 단속이 요구된다. 지속적인 단속 없이 불법주차를 근절하기 어렵다. 교차로 주변이나 소방도로는 불법주차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필요하면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차선 규제봉 등 주차를 막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자체가 단속에 적극 나서야겠지만 시민들이 자기 마을 가꾸기 차원에서 단속하는 방안도 장려할 수 있다. 단속이 있어야 공공 혹은 민간 주차장 산업도 활성화된다.

소방청의 권한 확대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소방당국이 건물 소화기 비치나 비상구 확보 등을 사전 점검하듯 도로에서도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지 사전에 점검하고 필요시 지자체에 개선을 요청해야 한다. 만약 불법 적치물이 있다면 치우도록 하고 불법주차가 문제라면 단속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가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을 확대하는 등 노력을 할 것이다. 화재가 난 후 불법주차 차량을 견인하거나 파손하는 것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원한다면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람들은 좋은 환경에서 더 교양 있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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