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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01 18:59 수정 : 2018.01.01 19:18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시인

2017년 한해, 문재인 정부의 새 농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먹거리가 안전한, 건강한 대한민국, 살맛나는 농어촌’의 깃발을 당차게 내걸었으나 선언이나 구호 말고는 체감되지 않았다. 핵심 농정공약인 농어업회의소법안,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법(농특위법)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재협상이 임박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위협에도 특단의 대책이 없는 노심초사의 상태로 비친다. 와중에 김영란법 개정은 그 모든 농정 현안보다 그토록 급하고 절박했었나. 대다수 국민들은 공감하거나 지지하기 어렵다.

어쩌면 농정당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 아직 정하지 않은 건 아닌가. 그래서 아직 새 농정은 첫걸음도 떼지 못한 건 아닌가. 자꾸 걱정되고 의심된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해 철저히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다행이겠으나 늙고 지친 농민들은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 거듭 당부하고 호소한다. 2018년 새해부터는 이 지점에서부터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먼저 지난 정부들의 농정 오류와 실패를 문재인 정부가 대신 사과하는 게 출발점이라야 한다. ‘저곡가 살농정책’에 오래 상처받은 농심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게 일의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농’(農)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을 국민과 함께 하자. 아예 농정의 뼈대를 다시 세우고 뿌리를 곧게 내리자.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으로 농정의 철학과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고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지켜주는 농부의 나라’로 가는 새 길을 열어젖히자.

그런 의미에서 최근 범농업계가 나서 농민의 권리와 농업의 가치를 담은 ‘농민(농업) 헌법’으로 개정하려는 노력은 고무적이다. 농민 단체들이 힘과 뜻을 모은 농민헌법운동본부, 농협의 ‘농업가치 헌법반영 1000만 서명운동’, 농림부의 ‘농업·농촌 개헌 대응 티에프(TF)’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농업법학회가 국회에 제출한 헌법개정 의견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현행 헌법 121조 및 123조의 농업과 관련한 8개의 개정시안은 “국가는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농어업 및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을 제고하라”고 요구한다. 농업계의 오랜 숙원을 농축해 담은 것이다. “단순히 경자유전의 원칙 폐지,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도입 여부 등 지엽적인 사항에 머무를 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농업대책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정확한 현실 인식의 발로다.

무엇보다 “국가는 직접지불의 방법으로 농어민의 농어업소득을 보전하되, 농어촌 경관 유지 및 생태환경보호를 조건으로 농어촌 거주자의 소득을 특별히 보전할 수 있다”는 조항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농업소득만으로 기초생활도 어려운 농업과 농촌의 구조악에 빠진 농민들에게 ‘농민 기본소득’의 법적 지급근거를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평소 농정예산의 70% 정도를 농민에게 직접 지급, 농가소득의 50% 이상을 보전해주는 유럽연합(EU)의 직불금제도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효과에 상응하는 이른바 ‘농민 기본소득’이 아니라면 우리 농민, 농업, 농촌의 난제를 풀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하나?”라고 불평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농민들조차 그렇다.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서 도저히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농민이 농촌에서 먹고살 수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폐농, 이농으로 결국 도시 난민이나 빈민이 된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가. 결과적으로 농촌의 문제는 농촌에 갇히지 않고 도시의 문제, 국가의 문제로 확대되고 만다.

농민 기본소득제도의 진실과 진심은 오로지 농민을 특별히 대접하고 대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농업이나 농촌 지역에 특혜를 주려는 건 더욱더 아니다. 국가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농민과 도시민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도상생하자는 것이다. 국민의 2%가 농민이지만 60%가 농촌에 사는 독일에서 농업 직불금제도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역의 분권자치를 실현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국가정책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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