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고된 업무가 걱정돼 그만두는 노동자들도 있다 하니, 그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누구나 짐작이 될 것이다. 하루 종일 비좁은 주방에서 밀려드는 케이크 주문에 따라, 본사 매뉴얼대로 장식품을 올리고 포장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한 매장에 제빵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협력업체 관리자가 찾아왔다. 관리자가 제빵기사에게 한 말은 대략 이렇다. “상생기업으로 전직해라. 이제 협력업체들 다 문 닫을 것이다. 파리바게뜨에 직접고용돼도 본사에 네가 갈 수 있는 자리 없다.” 제빵기사는 나중에 노동조합에 이렇게 전해왔다. “상생기업에 전직하지 않겠다는 것이 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마치 죄인 취급 하듯 얘기하는 게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거죠?” 파리바게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은 정부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내린 것이다. 그런데 법이 정한 대로 시정해줄 것을 기다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협력업체 관리자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 본사 소속 관리자들까지 나서 상생기업 근로계약서를 종용했다. “팔에 기름이 쏟아져 다쳤음. 협력사에선 산재 신청하면 기사 본인이 곤란해지는 거라며 치료비만 준다 함. 교육기사는 출근은 어찌되는 거냐며 산재 처리 막음. 상처가 너무 심해 성형외과 치료 받음. 다쳤음에도 인력이 없어 이틀밖에 쉬지 못함.” 지난해 9월말 토론회에서 어느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받은 현장의 부당사례 제보는 2시간 만에 300건이 넘었다. 그중엔 산재 처리 못 한 사례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파리바게뜨 협력업체 11곳 통틀어서 질병으로 인한 산재 신청 건수는 총 5건이 전부였다. 그중 승인은 1건뿐이었다. 산재 발생이 없는 게 아니라 산재 신청을 막아왔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9월에 실시한 제빵기사 설문조사에서 업무상 부상 시 ‘개인보험이나 비용으로 처리’ 응답이 62.2%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과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팔뚝에 문신처럼 화상자국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20대 후반의 앳된 청년은 하지정맥류 약으로 힘든 노동을 버틴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한달에 3~4일밖에 쉬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고용노동부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근로감독 결과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은 “직접고용하면 인건비 증가로 회사 문 닫아야” “법의 폭력” 등을 거론하며 과장된 비판을 쏟아냈다. 마치 불법파견의 최대 피해자가 기업인 양 착각할 정도였다. 정작 불법파견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을 청년노동자들의 위험, 인권침해에 대해선 침묵했다. “빵이 뚱뚱하면 ○○기사처럼 된다”는 외모 비하를 비롯해, 탈의실도 없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비인권적 근로조건에 대해선 노조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입을 닫았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지금 너무 아프다. 청년들은 차별받은 지난 세월을 입 다물고 꾸욱 참아왔다. 잘 참아왔고 더 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법대로 하자는 사람이 피해를 당하고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과 노동존중 정책이 민간분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볼 가늠자가 될 것이다. 청년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보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불법파견 문제의 본질이다. 연내 직접고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제빵기사들은 도리어 해고의 위험에 시달리며 우울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았다. 산재 위험과 인권침해의 한가운데에서 말없이 빵을 구웠던, 청년노동자들은 죄가 없다.
왜냐면 |
[왜냐면] 말없이 빵을 구운 청년들은 죄가 없다 / 임영국 |
임영국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고된 업무가 걱정돼 그만두는 노동자들도 있다 하니, 그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누구나 짐작이 될 것이다. 하루 종일 비좁은 주방에서 밀려드는 케이크 주문에 따라, 본사 매뉴얼대로 장식품을 올리고 포장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한 매장에 제빵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협력업체 관리자가 찾아왔다. 관리자가 제빵기사에게 한 말은 대략 이렇다. “상생기업으로 전직해라. 이제 협력업체들 다 문 닫을 것이다. 파리바게뜨에 직접고용돼도 본사에 네가 갈 수 있는 자리 없다.” 제빵기사는 나중에 노동조합에 이렇게 전해왔다. “상생기업에 전직하지 않겠다는 것이 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마치 죄인 취급 하듯 얘기하는 게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거죠?” 파리바게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은 정부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내린 것이다. 그런데 법이 정한 대로 시정해줄 것을 기다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협력업체 관리자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 본사 소속 관리자들까지 나서 상생기업 근로계약서를 종용했다. “팔에 기름이 쏟아져 다쳤음. 협력사에선 산재 신청하면 기사 본인이 곤란해지는 거라며 치료비만 준다 함. 교육기사는 출근은 어찌되는 거냐며 산재 처리 막음. 상처가 너무 심해 성형외과 치료 받음. 다쳤음에도 인력이 없어 이틀밖에 쉬지 못함.” 지난해 9월말 토론회에서 어느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받은 현장의 부당사례 제보는 2시간 만에 300건이 넘었다. 그중엔 산재 처리 못 한 사례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파리바게뜨 협력업체 11곳 통틀어서 질병으로 인한 산재 신청 건수는 총 5건이 전부였다. 그중 승인은 1건뿐이었다. 산재 발생이 없는 게 아니라 산재 신청을 막아왔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9월에 실시한 제빵기사 설문조사에서 업무상 부상 시 ‘개인보험이나 비용으로 처리’ 응답이 62.2%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과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팔뚝에 문신처럼 화상자국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20대 후반의 앳된 청년은 하지정맥류 약으로 힘든 노동을 버틴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한달에 3~4일밖에 쉬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고용노동부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근로감독 결과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은 “직접고용하면 인건비 증가로 회사 문 닫아야” “법의 폭력” 등을 거론하며 과장된 비판을 쏟아냈다. 마치 불법파견의 최대 피해자가 기업인 양 착각할 정도였다. 정작 불법파견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을 청년노동자들의 위험, 인권침해에 대해선 침묵했다. “빵이 뚱뚱하면 ○○기사처럼 된다”는 외모 비하를 비롯해, 탈의실도 없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비인권적 근로조건에 대해선 노조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입을 닫았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지금 너무 아프다. 청년들은 차별받은 지난 세월을 입 다물고 꾸욱 참아왔다. 잘 참아왔고 더 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법대로 하자는 사람이 피해를 당하고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과 노동존중 정책이 민간분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볼 가늠자가 될 것이다. 청년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보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불법파견 문제의 본질이다. 연내 직접고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제빵기사들은 도리어 해고의 위험에 시달리며 우울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았다. 산재 위험과 인권침해의 한가운데에서 말없이 빵을 구웠던, 청년노동자들은 죄가 없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고된 업무가 걱정돼 그만두는 노동자들도 있다 하니, 그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누구나 짐작이 될 것이다. 하루 종일 비좁은 주방에서 밀려드는 케이크 주문에 따라, 본사 매뉴얼대로 장식품을 올리고 포장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한 매장에 제빵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협력업체 관리자가 찾아왔다. 관리자가 제빵기사에게 한 말은 대략 이렇다. “상생기업으로 전직해라. 이제 협력업체들 다 문 닫을 것이다. 파리바게뜨에 직접고용돼도 본사에 네가 갈 수 있는 자리 없다.” 제빵기사는 나중에 노동조합에 이렇게 전해왔다. “상생기업에 전직하지 않겠다는 것이 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마치 죄인 취급 하듯 얘기하는 게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거죠?” 파리바게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은 정부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내린 것이다. 그런데 법이 정한 대로 시정해줄 것을 기다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협력업체 관리자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 본사 소속 관리자들까지 나서 상생기업 근로계약서를 종용했다. “팔에 기름이 쏟아져 다쳤음. 협력사에선 산재 신청하면 기사 본인이 곤란해지는 거라며 치료비만 준다 함. 교육기사는 출근은 어찌되는 거냐며 산재 처리 막음. 상처가 너무 심해 성형외과 치료 받음. 다쳤음에도 인력이 없어 이틀밖에 쉬지 못함.” 지난해 9월말 토론회에서 어느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받은 현장의 부당사례 제보는 2시간 만에 300건이 넘었다. 그중엔 산재 처리 못 한 사례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파리바게뜨 협력업체 11곳 통틀어서 질병으로 인한 산재 신청 건수는 총 5건이 전부였다. 그중 승인은 1건뿐이었다. 산재 발생이 없는 게 아니라 산재 신청을 막아왔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9월에 실시한 제빵기사 설문조사에서 업무상 부상 시 ‘개인보험이나 비용으로 처리’ 응답이 62.2%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과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팔뚝에 문신처럼 화상자국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20대 후반의 앳된 청년은 하지정맥류 약으로 힘든 노동을 버틴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한달에 3~4일밖에 쉬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고용노동부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근로감독 결과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은 “직접고용하면 인건비 증가로 회사 문 닫아야” “법의 폭력” 등을 거론하며 과장된 비판을 쏟아냈다. 마치 불법파견의 최대 피해자가 기업인 양 착각할 정도였다. 정작 불법파견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을 청년노동자들의 위험, 인권침해에 대해선 침묵했다. “빵이 뚱뚱하면 ○○기사처럼 된다”는 외모 비하를 비롯해, 탈의실도 없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비인권적 근로조건에 대해선 노조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입을 닫았다. 파리바게뜨 청년노동자들은 지금 너무 아프다. 청년들은 차별받은 지난 세월을 입 다물고 꾸욱 참아왔다. 잘 참아왔고 더 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법대로 하자는 사람이 피해를 당하고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과 노동존중 정책이 민간분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볼 가늠자가 될 것이다. 청년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보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불법파견 문제의 본질이다. 연내 직접고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제빵기사들은 도리어 해고의 위험에 시달리며 우울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았다. 산재 위험과 인권침해의 한가운데에서 말없이 빵을 구웠던, 청년노동자들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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