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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5 17:42 수정 : 2017.12.25 20:31

송경동
시인

며칠 전 대법원엘 다녀왔다. 6년여 만에 나와 박래군, 정진우, 이원호 등에 대한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확정 판결이 있었다. 결과는 다시 ‘부산고법으로 파기 환송’. 의외의 판결이었다. 촛불혁명 후 세상이 조금 달라진 것인가. 그러나 변호인단이 입수한 판결문은 기가 막혔다. 1차 희망버스 ‘해산명령 불응’ 무죄 부분을 유죄 취지로, 2차 희망버스 ‘해산명령 불응’ 유죄 부분을 무죄 취지로 읽은 조삼모사의 내용이었다. 아무런 실익도 없이 다시 재판받으러 부산여행을 할 생각을 하니 화가 난다. ‘여러 공범’들과 변호인단, 희망버스 사법탄압 대응모임인 ‘돌려차기’ 사람들이 2011년 이후 ‘부산 단체여행’을 한 차비만 모아도 차 한두 대는 살 판이다.

이명박근혜 시대 갖은 악행이 밝혀지고 있는 때이기에 사법부에도 최소한의 반성과 양심과 예의가 요구되고 있다.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은 이명박(MB) 정부가 재벌들에 ‘더 부자 되세요’라는 뜻으로 짓밟아놓은 공동체의 윤리를 어렵사리 되살린 사회연대운동이었다. 한 사람의 여성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버스를 타고 모인 아름다운 사람들 운동을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가 있는 조국 전 서울대 법대 교수는 1955년 미국에서 흑인 인종차별에 마침표를 찍었던 ‘몽고메리 버스 승차거부 운동’에 빗대기도 했다. 당시 엠비 정부는 버스회사와 단순 참가자들 계좌까지 모두 뒤지고, 최루액이 가득 담긴 물대포를 쏘며 탄압했다.

경찰청이 낸 <2012년 경찰백서>에 따르면 사법처리당한 사람만 536명에 이르고, 이들이 낸 벌금액만 2억5천만원이 넘는다.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어떤 경영상의 위기도 없는 위법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런 불의를 바로잡고, 자본의 이득만을 위해 자행돼왔던 정리해고 흐름에 경종을 울린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국가가 도리어 고마워하고 사과해야 될 일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런 사회적 진실을 바로잡았다면, 그간 사법탄압을 당해온 이름 없는 희망버스 승객 536명의 명예가 바로잡힐 소중한 기회였는데 슬며시 가슴 한켠에서 분이 올라온다.

이렇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생각거니 이 길 역시 촛불혁명의 길이 그랬듯이 권력들이 해주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 만들어가고, 뚫어가고, 넘어가고, 만들어가는 길일 거라는 다짐을 해본다. 공교롭게도 2011년 희망버스 대법원 판결을 앞둔 날 새벽, 나는 또다시 고공에 올라가 있는 두 노동자를 살리는 일에 함께하자는 제안문을 써야 했다. 매번 해봐서 이젠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으련만 전혀 ‘익숙해지거나 편해지지는 않는 일들’. 500㏄ 맥주 한 캔의 취기를 빌려야 했다. 언제나 ‘익숙해지면 안 되는 일들이, 편해지면 안 되는 일들이 없어지는 세상을 가질 수 있을까’.

서울 목동에 있는 75m 굴뚝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에서 다사다난했던 2017년 마지막 촛불을 들자는 제안이다. 현재까지 457명의 제안자들이 함께 나섰다. 경북 구미에 있던 한국합섬. 도산 이후 5년을 싸워 인수사인 스타케미칼로 재입사했으나, 2년여 만에 다시 폐업으로 쫓겨난 노동자들. 2014년 5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장장 408일을 문 닫힌 공장 45m 굴뚝 위에서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세워야 했던 차광호와 그의 벗들.

408일 만에 다시 고용, 노조, 단체협약 승계라는 합의를 보고 내려왔지만, 회사가 약속한 자회사 파인텍은 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급여는 한달 120만원 수준. 항의도 무시. 현재 원청이 재계약을 하지 않아 파인텍이라는 공장은 사라지고 없다. 작년엔 이런 ‘헬조선’을 타파하겠다고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에 입주해 몇달 노숙 생활을 했다. 다시 그들이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다. 이번엔 역할을 바꿔 홍기탁과 박준호가 올라가고, 차광호가 하루 세 끼를 긴 밧줄에 매달아 올리고 있다. 그들의 셈법에 따르면 오늘로 끝나지 않은 고공농성이 ‘408+44일’째다.

올해 마지막 주말인 12월30일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모여 2200만 노동자 가족과 1700만 촛불시민의 뜻과 요구를 전하고 행진해 75m 가녀린 하늘을 찾아간다. 가는 길에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수배자,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단식 중인 민주당사도 들르고,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2년째 노숙 중인 콜트콜텍 농성장도 들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촛불혁명을, 아직도 우리 주변에 건재한 제2, 제3의 박근혜와 이재용들을 기억하자는 2017년 마지막 촛불항쟁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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