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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4 18:01 수정 : 2005.11.24 18:01

왜냐면

분량이 더 늘어나면 안 그래도 어렵고 표준점수를 얻기 어려운 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만 더 커져 당연히 그 재량활동 시간은 수능에서 아주 중요한 국·영·수 위주로 편성될 수밖에 없다.

11월23일치 <한겨레> 1면 머릿기사로 ‘중고교 근현대사 교육 강화된다’는 글이 실렸다. 국사교육의 현실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아, 교육부가 드디어 국사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정책에 옮기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기사다. 그러나 현직 국사교사로서 교육부의 정책이 절대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 아님을 밝히려고 이 글을 쓴다.

요 몇 해 사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발해사 왜곡,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사교육의 중요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미 중·고교 국사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지금 국사과목이 수능에서 선택인 줄 몰랐다며 ‘한 나라의 역사를 선택으로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엄청난 성토의 글을 올렸다. 교육부에서는 순간적인 궁여지책으로 각 대학에 국사를 필수로 하라는 권장 공문을 보냈고, 그 결과 처음부터 국사를 필수로 했던 서울대 외에 어떤 대학도 국사를 필수로 한 대학은 없었다. 물론 이것도 문과만 필수이니 이과는 국사를 몰라도 상관없다. 거기에 더하여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국사가 선택인 건 당연하다’는 장문의 전자편지를 현직 교사들에게 보내 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고맙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지금의 국사교육 강화는 이렇게 진행된 교육부의 국민에게 잘 보이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절대 아니다. 현 교육부 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고1 국사에 근현대사 비중을 더 많이 집어넣어 수능 국사에서 근현대사 부분을 출제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중학교에서 역사과목을 독립시킨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첫번째 요지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현재 국사는 수능 과목 중 문과 사회탐구 11개 선택과목의 하나다. 국사를 제외한 모든 선택과목이 1학년 때 기초를 배우고, 2·3학년 때에 본 과목을 배워 보통 한 학기에 4~5시간은 배운다. 그런데 국사는 1학년 때 한 학기에 두 시간 배우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398쪽의 분량을 2시간에 끝내야 한다. 이런 과목도 국사밖에 없다. 2시간 배우고 수능 과목에 들어가는 것도 국사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학년이 되면 시간을 다른 곳에서 빼내거나 보충수업 때 배우는 학교가 아닌 이상은 국사를 선택하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서 사회탐구는 표준점수제라 서울대가 국사를 필수로 지정했기에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일부 최상위권 학생들은 국사를 선택한다. 때문에 일반 학생들은 좋은 표준점수를 얻기에 불리하기 때문에 국사를 더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근현대사 부분의 비중을 늘리고 수능에도 출제한단다. 그러면 누가 과연 국사를 선택하고 공부를 할까? 교육부는 여기에 1학년 재량활동 1시간을 국사로 할 것을 각 학교에 권장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변명을 한다. 대학에도 국사를 필수로 하라고 권장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한 군데도 필수로 안 했는데, 고등학교라고 1시간을 더 늘릴까? 자신이 관리자라면 늘릴 수 있을까? 현장은 전혀 모른 채 탁상공론 식의 일처리만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어차피 사회탐구 11과목 중 하나이고 분량이 더 늘어나면 안 그래도 어렵고 표준점수를 얻기 어려운 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만 더 커져 당연히 그 재량활동 시간은 수능에서 아주 중요한 국·영·수 위주로 편성될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현직 국사교사는 지금도 2시간에 끝내기 힘든 국사를 비중이 더 늘어난 근현대사까지 가르쳐야 한다. 깊은 지식과 흥미를 주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학생들은 더 흥미를 잃을 게 뻔하고 국사교육은 더 죽어갈 것이다.

재량활동 시간을 배정해서 세 시간 배우는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시간은 더 늘었다지만 가르칠 분량은 더 증가하여 예전처럼 헉헉대며 가르칠 것이며, 더 많은 내용이 수능에 나오기 때문에 국사를 선택할 학생도 줄어들 것임은 안 봐도 훤하다. 이게 어떻게 국사교육 강화인가? 정말 왜 이렇게 현장을 모르는가? 그다지 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왜 국민들에게 눈속임을 하는가?

국사교육 강화는 교과서 내용을 늘리는 게 아니라 문·이과 수능 필수로 만들면 된다. 모두 필수로 만들기 힘들면 당장 문과라도 필수로 만들면 되는데 왜 이리 빙빙 돌리는가? 필수로 만들면 하기 싫어도 누구나 국사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국사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이다. 필수로 만들지 못하고 다른 사회탐구 과목과 형평성을 맞추고 싶다면 그냥 지금처럼 놔두길 바란다.

서동필/국사교사·광주 운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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