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11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이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이 속한 대구 서씨 가문 도록을 회계 등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규장각 명의로 펴낸 일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사안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첫째, 종친회가 펴내는 가문의 도록이 규장각 이름으로 나온 점이다. 이는 그동안 규장각의 관례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둘째, 규장각 직원들이 작업에 관여했는데 예산과 인력 등 사업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적 기관이 사적 이익에 동원되었다, 공공자원의 유용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보도된 내용만으로 보면 분명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안이 보도된 뒤 규장각 이상찬 원장이 한 말은 이 일이 ‘조사’ 수준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원장은 “10년 동안 확보하지 못했던 규장각의 도서 수리·복원 사업 예산 20억원을 2010년 서 의원이 받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특수 목적 연구비를 제외한 규장각의 2017년 예산이 3억7천만원으로, 소장 자료 24만점에 달하는 규장각의 전기료를 내는 데 급급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 예산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규장각은 조선시대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민족의 역사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1923년 경성대학 설립 후 조선총독부는 규장각을 이곳으로 이관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한 뒤 경성대학의 시설이 그대로 인수되었으므로 규장각 소장 자료 역시 그대로 서울대에 이관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정했던 규장각 관할권의 관례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1년 국립대학 법인화가 추진되면서 서울대의 법적 지위가 변경되었고, 그에 따라 규장각 소장 ‘문화재’의 관리에도 변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22조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양도될 국유재산 및 물품 중에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를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후 아무런 후속 대책이 없었다. ‘대구 서씨 도록 발간’과 같은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관할권이 없는데 조직에 서울대에서 무엇하러 예산을 배정하겠는가. 그동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한영우 교수 등 역대 관장들의 노력으로 보존시설을 갖추고 연구 성과를 제출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규장각의 방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리, 정리,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인문한국(HK)연구단, 단기 사업별 프로젝트팀을 제외하고, 규장각 소속 정규직 연구원은 오랫동안 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규장각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규장각은 법적, 역사적으로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였다.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원천이라는 상식에 동의한다면, 규장각의 위상과 역할을 국가 차원에서 재고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장서각, 한국고전번역원 등 유관 기관의 종합적 발전계획 속에서 ‘역사기록관’의 정책과 연구를 어떻게 수행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규장각이 기여할 바를 함께 고민하고, 그 기여에 대한 기대에 맞추어 연구인력을 확충함으로써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 성과에 걸맞은 활용성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
[왜냐면] ‘규장각’을 이대로 둘 것인가? / 오항녕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11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이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이 속한 대구 서씨 가문 도록을 회계 등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규장각 명의로 펴낸 일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사안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첫째, 종친회가 펴내는 가문의 도록이 규장각 이름으로 나온 점이다. 이는 그동안 규장각의 관례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둘째, 규장각 직원들이 작업에 관여했는데 예산과 인력 등 사업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적 기관이 사적 이익에 동원되었다, 공공자원의 유용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보도된 내용만으로 보면 분명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안이 보도된 뒤 규장각 이상찬 원장이 한 말은 이 일이 ‘조사’ 수준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원장은 “10년 동안 확보하지 못했던 규장각의 도서 수리·복원 사업 예산 20억원을 2010년 서 의원이 받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특수 목적 연구비를 제외한 규장각의 2017년 예산이 3억7천만원으로, 소장 자료 24만점에 달하는 규장각의 전기료를 내는 데 급급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 예산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규장각은 조선시대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민족의 역사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1923년 경성대학 설립 후 조선총독부는 규장각을 이곳으로 이관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한 뒤 경성대학의 시설이 그대로 인수되었으므로 규장각 소장 자료 역시 그대로 서울대에 이관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정했던 규장각 관할권의 관례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1년 국립대학 법인화가 추진되면서 서울대의 법적 지위가 변경되었고, 그에 따라 규장각 소장 ‘문화재’의 관리에도 변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22조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양도될 국유재산 및 물품 중에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를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후 아무런 후속 대책이 없었다. ‘대구 서씨 도록 발간’과 같은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관할권이 없는데 조직에 서울대에서 무엇하러 예산을 배정하겠는가. 그동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한영우 교수 등 역대 관장들의 노력으로 보존시설을 갖추고 연구 성과를 제출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규장각의 방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리, 정리,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인문한국(HK)연구단, 단기 사업별 프로젝트팀을 제외하고, 규장각 소속 정규직 연구원은 오랫동안 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규장각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규장각은 법적, 역사적으로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였다.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원천이라는 상식에 동의한다면, 규장각의 위상과 역할을 국가 차원에서 재고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장서각, 한국고전번역원 등 유관 기관의 종합적 발전계획 속에서 ‘역사기록관’의 정책과 연구를 어떻게 수행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규장각이 기여할 바를 함께 고민하고, 그 기여에 대한 기대에 맞추어 연구인력을 확충함으로써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 성과에 걸맞은 활용성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11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이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이 속한 대구 서씨 가문 도록을 회계 등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규장각 명의로 펴낸 일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사안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첫째, 종친회가 펴내는 가문의 도록이 규장각 이름으로 나온 점이다. 이는 그동안 규장각의 관례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둘째, 규장각 직원들이 작업에 관여했는데 예산과 인력 등 사업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적 기관이 사적 이익에 동원되었다, 공공자원의 유용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보도된 내용만으로 보면 분명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안이 보도된 뒤 규장각 이상찬 원장이 한 말은 이 일이 ‘조사’ 수준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원장은 “10년 동안 확보하지 못했던 규장각의 도서 수리·복원 사업 예산 20억원을 2010년 서 의원이 받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특수 목적 연구비를 제외한 규장각의 2017년 예산이 3억7천만원으로, 소장 자료 24만점에 달하는 규장각의 전기료를 내는 데 급급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 예산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규장각은 조선시대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민족의 역사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1923년 경성대학 설립 후 조선총독부는 규장각을 이곳으로 이관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한 뒤 경성대학의 시설이 그대로 인수되었으므로 규장각 소장 자료 역시 그대로 서울대에 이관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정했던 규장각 관할권의 관례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1년 국립대학 법인화가 추진되면서 서울대의 법적 지위가 변경되었고, 그에 따라 규장각 소장 ‘문화재’의 관리에도 변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22조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양도될 국유재산 및 물품 중에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를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후 아무런 후속 대책이 없었다. ‘대구 서씨 도록 발간’과 같은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관할권이 없는데 조직에 서울대에서 무엇하러 예산을 배정하겠는가. 그동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한영우 교수 등 역대 관장들의 노력으로 보존시설을 갖추고 연구 성과를 제출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규장각의 방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리, 정리,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인문한국(HK)연구단, 단기 사업별 프로젝트팀을 제외하고, 규장각 소속 정규직 연구원은 오랫동안 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규장각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규장각은 법적, 역사적으로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였다.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원천이라는 상식에 동의한다면, 규장각의 위상과 역할을 국가 차원에서 재고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장서각, 한국고전번역원 등 유관 기관의 종합적 발전계획 속에서 ‘역사기록관’의 정책과 연구를 어떻게 수행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규장각이 기여할 바를 함께 고민하고, 그 기여에 대한 기대에 맞추어 연구인력을 확충함으로써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 성과에 걸맞은 활용성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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