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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4 17:58 수정 : 2017.12.04 19:04

윤가브리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나는 아프다. 1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에이즈로 몸이 아픈 적이 있었지만 꾸준히 약을 복용해 지금은 건강해졌는데도 아프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로 결핍된 면역력이 오르고, 바이러스 수치도 혈액검사상 ‘0’으로 나오는데도 나는 계속 아프다. 내가 아픈 원인은 HIV/AIDS(에이즈)를 이유로 진료거부, 수술거부 등을 하는 의료차별 때문이다. ‘HIV감염인’(이하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은 에이즈가 보고된 지 32년이나 지난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의료진이 의료행위를 할 때에도 HIV는 감염 경로가 같은 B형간염, C형간염과 예방법이 같은데도 차별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 12월1일은 차별 없는 감염인의 인권 보장을 되새기는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의료차별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감염인을 거부하는 병원도 개인병원,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 다양하다. 지난해와 올해 감염인 의료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된 피해사례가 4건이나 된다. 한 대학병원에서 혈액투석을 거부했고, 개인병원에서 물리치료를 거부했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은 체온계, 혈압계를 따로 쓰는 등의 차별행위로 진정이 접수됐다.

이렇게 민간병원에서의 의료차별도 심각한데 최근 공공의료기관에서도 감염인을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재활원’은 시각장애, 편마비가 있는 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했다. 국립재활원은 거부 이유를 환자가 면역력이 약해 격리실이 필요한데 격리실이 없고, 다인실에 입원하려면 면역 수치가 200 이상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해서 환자가 약을 잘 복용해 면역 수치가 200이 되어 다시 입원을 의뢰하니 이번엔 관련 ‘과’가 없어서 입원이 안 된다고 하였다. 즉 감염내과가 없다고 에이즈 환자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재활원은 B형간염, C형간염, 결핵환자를 감염내과가 없다고 입원을 거부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국립재활원은 재활치료를 하는 곳이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데 왜 감염내과가 필요한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공공의료기관에서 감염인의 입원 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해 지정한 한 요양병원이 환자 사망 사건, 인권유린 등의 문제로 위탁계약이 취소되었다. 그 이후 전국 시·도립 요양병원 33곳에 감염인 입원을 문의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아직도 갈 곳이 없어 종합병원에 단기 입원하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아다닌다.

시·도립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의료기관도 감염인을 거부한 터에 민간병원의 의료차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어떤 입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의료차별 해결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민간병원들이 협조를 안 해 준다며 민간병원 탓을 했는데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들어야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하나 더, 지난여름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서를 찾아 소방관 한명 한명이 ‘국가’라고 했다. 위기에 빠진 사람에게 소방관은 국가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국가’다! 수십발의 총탄을 피해 탈북한 북한 병사에게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이란 ‘국가’다.

그러나 그 국가는 ‘권력’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그 국가가 에이즈를 이유로 거부하고, 돈이 안 된다고 거부해도 아픈 사람은 대항할 힘이 없다. 그래서 공공의료가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도 ‘국가’지만 권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기관은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차별 없는 진료에 앞장서야 하고, 그 일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할 일이다. 공공의료의 존재 이유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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