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박사·연세대 SSK 연구교수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서 낙태죄(임신중단)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청원이 10월29일 기준 30일 만에 23만명을 넘어서면서 낙태죄 찬반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소통광장 청원에 특정 청원 참여인이 30일 이내 20만명을 넘게 되면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급이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낙태죄 부분은 5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실 정부 차원에서 법 개폐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낙태죄 폐지 찬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헌법조항 개정을 다룬 아일랜드 시민의회 방식의 공론화 과정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낙태는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1983년 헌법개정 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66.45%가 ‘태아의 권리’를 헌법에 삽입하는 데 동의하여 낙태를 수정헌법 제8조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2012년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임신 17주차 사비타는 의료진에게서 태아가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몸 상태가 악화되자 수차례 낙태를 요청하였으나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아일랜드는 임신으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존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출산하거나 자연유산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후 사비타가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되자 약 20년간 잠잠하던 낙태 금지 폐지를 위한 캠페인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에서 낙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자 의회 결의로 낙태를 포함한 다섯 가지 헌법조항을 다룰 시민의회를 지난해 10월부터 구성해 현재 운영 중이다. 시민의회의 구성원 100명 중 99명은 지역, 성, 연령, 사회적 계층 등과 같은 세부적인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기초해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하였으며 의장만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였다. 100명 중 여성 52명, 남성 48명이며, 연령 분포는 18∼24살 10명, 25∼39살 29명, 40∼54살 28명, 55살 이상 33명으로 꾸려졌다. 시민의회는 매달 첫 주 1박 2일로 개최되고 있다. 전문가, 시민사회 및 시민단체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고, 안건과 관련된 이익단체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살펴볼 시간과 질의응답 및 토론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전문가들의 발표 및 이들과의 토론을 보장하는 비공개 섹션을 제외하고는 전 과정이 시민의회 누리집을 통해 생중계되고, 모든 문서는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5회에 걸쳐 낙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87%가 수정헌법 제8조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투표하였다. 시민의회는 6월 말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하였으며 9월 정부에서는 2018년 5∼6월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와 관련한 공론화 과정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속에 정부는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청원을 계기로 낙태죄 찬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 통해 입법화를 논의하는 것이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좀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왜냐면 |
[왜냐면] 낙태죄 찬반, 아일랜드 시민의회 방식의 공론화를 / 이지문 |
이지문
정치학박사·연세대 SSK 연구교수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서 낙태죄(임신중단)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청원이 10월29일 기준 30일 만에 23만명을 넘어서면서 낙태죄 찬반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소통광장 청원에 특정 청원 참여인이 30일 이내 20만명을 넘게 되면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급이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낙태죄 부분은 5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실 정부 차원에서 법 개폐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낙태죄 폐지 찬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헌법조항 개정을 다룬 아일랜드 시민의회 방식의 공론화 과정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낙태는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1983년 헌법개정 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66.45%가 ‘태아의 권리’를 헌법에 삽입하는 데 동의하여 낙태를 수정헌법 제8조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2012년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임신 17주차 사비타는 의료진에게서 태아가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몸 상태가 악화되자 수차례 낙태를 요청하였으나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아일랜드는 임신으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존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출산하거나 자연유산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후 사비타가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되자 약 20년간 잠잠하던 낙태 금지 폐지를 위한 캠페인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에서 낙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자 의회 결의로 낙태를 포함한 다섯 가지 헌법조항을 다룰 시민의회를 지난해 10월부터 구성해 현재 운영 중이다. 시민의회의 구성원 100명 중 99명은 지역, 성, 연령, 사회적 계층 등과 같은 세부적인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기초해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하였으며 의장만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였다. 100명 중 여성 52명, 남성 48명이며, 연령 분포는 18∼24살 10명, 25∼39살 29명, 40∼54살 28명, 55살 이상 33명으로 꾸려졌다. 시민의회는 매달 첫 주 1박 2일로 개최되고 있다. 전문가, 시민사회 및 시민단체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고, 안건과 관련된 이익단체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살펴볼 시간과 질의응답 및 토론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전문가들의 발표 및 이들과의 토론을 보장하는 비공개 섹션을 제외하고는 전 과정이 시민의회 누리집을 통해 생중계되고, 모든 문서는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5회에 걸쳐 낙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87%가 수정헌법 제8조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투표하였다. 시민의회는 6월 말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하였으며 9월 정부에서는 2018년 5∼6월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와 관련한 공론화 과정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속에 정부는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청원을 계기로 낙태죄 찬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 통해 입법화를 논의하는 것이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좀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정치학박사·연세대 SSK 연구교수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서 낙태죄(임신중단)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청원이 10월29일 기준 30일 만에 23만명을 넘어서면서 낙태죄 찬반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소통광장 청원에 특정 청원 참여인이 30일 이내 20만명을 넘게 되면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급이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낙태죄 부분은 5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실 정부 차원에서 법 개폐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낙태죄 폐지 찬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헌법조항 개정을 다룬 아일랜드 시민의회 방식의 공론화 과정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낙태는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1983년 헌법개정 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66.45%가 ‘태아의 권리’를 헌법에 삽입하는 데 동의하여 낙태를 수정헌법 제8조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2012년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임신 17주차 사비타는 의료진에게서 태아가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몸 상태가 악화되자 수차례 낙태를 요청하였으나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아일랜드는 임신으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존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출산하거나 자연유산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후 사비타가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되자 약 20년간 잠잠하던 낙태 금지 폐지를 위한 캠페인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에서 낙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자 의회 결의로 낙태를 포함한 다섯 가지 헌법조항을 다룰 시민의회를 지난해 10월부터 구성해 현재 운영 중이다. 시민의회의 구성원 100명 중 99명은 지역, 성, 연령, 사회적 계층 등과 같은 세부적인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기초해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하였으며 의장만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였다. 100명 중 여성 52명, 남성 48명이며, 연령 분포는 18∼24살 10명, 25∼39살 29명, 40∼54살 28명, 55살 이상 33명으로 꾸려졌다. 시민의회는 매달 첫 주 1박 2일로 개최되고 있다. 전문가, 시민사회 및 시민단체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고, 안건과 관련된 이익단체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살펴볼 시간과 질의응답 및 토론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전문가들의 발표 및 이들과의 토론을 보장하는 비공개 섹션을 제외하고는 전 과정이 시민의회 누리집을 통해 생중계되고, 모든 문서는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5회에 걸쳐 낙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87%가 수정헌법 제8조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투표하였다. 시민의회는 6월 말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하였으며 9월 정부에서는 2018년 5∼6월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와 관련한 공론화 과정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속에 정부는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청원을 계기로 낙태죄 찬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 통해 입법화를 논의하는 것이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좀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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