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0.16 18:07 수정 : 2017.10.16 18:44

정우람
미국 변호사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척시대, 독립전쟁과 같은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 터 잡은 나라에서 총기 사용은 일견 개인의 정당한 권리로 인식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 전반에 그러한 총기 우호적 정서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별개로, 실제 개인의 총기 사용이 미국 연방헌법의 명시적 권리로 인정되는 것인지 여부는 2008년까지도 확정되지 않았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법률적 시한폭탄이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총기 권리를 언급한 1791년자 헌법조문의 모호한 문장 구조였습니다.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2014년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조문이 다섯 글자만 더 길었더라도 후세에 총기 참사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탄했습니다. 그가 모호성을 지적한 미국 수정헌법 제2조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잘 훈련된 민병대는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사용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우리는 전문지식 없이도 해당 조문의 모호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병대의 존립 목적과 인민의 권리가 상호 조화하지 못하는 허술한 문법 구성 때문입니다.

불명확한 법조문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혼란을 낳았습니다. 요컨대 수정헌법 제2조가 총기 사용을 민병대의 권리로 제공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시민 개개인의 권리로 확장한다는 의미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웠습니다. 주법원들은 이를 개인의 보편적 권리로 긍정했지만, 연방법원은 그 범위를 민병대의 특수 권리로 한정했습니다. 이 불편한 법률적 괴리에 대해 대법원은 침묵했습니다. 최종적 해석이 가져올 사회구조적 여파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 총기사고 희생자가 매년 3만여명에 육박하면서 미국 정부가 움직였고, 결국 2008년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양쪽으로 갈린 미 연방대법원의 공방은 치열했습니다. 제정 의도와 취지, 목적, 역사 등 여러 각도에서 심층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쟁점은 조문의 모호한 문장구조로 되돌아왔습니다. 조문을 구성하는 두 구절을 분리, 혹은 통합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툼은 필연이었습니다. 다수의견은 인민(the people)을 국민이라는 법률적 의미로, 소수의견은 민병대원이라는 문맥상 의미로 유추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논거를 확보했습니다. 결국 다수는 “잘 훈련된 민병대는 주의 안보에 필수이고, 나아가 무기를 소장하고 사용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취지로 두 구절을 분리하여 개인의 총기 사용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반면 소수는 “잘 훈련된 민병대는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무기를 소장하고 사용하는 민병대원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로 두 구절을 철저히 포박했습니다. 이 작고도 큰 차이는 화해하지 못하고 5 대 4의 근소한 결과로 개인의 총기 허용이 확정됐습니다.

이쯤 되면 소수의견을 주도했던 스티븐스 대법관이 한탄한 다섯 글자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when serving in the militia”(민병대에 복무하는 때)였습니다. “잘 훈련된 민병대는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민병대에 복무하는 때에 한하여 요구되는 무기 소장 및 사용에 관한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환언하면, 공권력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의 총기 사용은 연방헌법의 명시적 권리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국가의 총기 규제 및 금지가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이 확신한 수정헌법 제2조의 원의입니다. 근대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이 법논리적 다툼의 불씨를 되살릴 것인지 미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