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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5 18:13 수정 : 2017.11.20 20:24

윤성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대구시 동구 동부로3길

최근 두 가지 흥미로운 풍경이 있었다. 하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였다. 이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난데없이 성소수자 문제 관련 질의를 반복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쯤 자유한국당은 여성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해당 토론회에 참석한 홍준표 대표는 카메라 앞에서 조는가 하면, ‘젠더’의 뜻조차 모르는 촌극을 연출했다. 나는 이 두 장면에 한국 보수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분단정부 수립 이후 남한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보수 세력의 무기는 ‘차별’이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빨갱이 차별’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그것을 법제화한 것이었고, 이 무렵 창설된 국민보도연맹은 ‘빨갱이’들을 별도 관리하는 블랙리스트였다.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국 도처에서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담론은 이 끔찍한 비극 속에서 탄생했다. 이후 역대 독재정권은 민주화운동 인사,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철거민들에게 가차 없이 이 딱지를 붙이며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정권 보위의 도구이자,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는 흉기였던 그것은 어느덧 ‘종북 차별’로 진화했다. 이명박·박근혜 적폐정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종북 좌파’로 낙인찍은 문화계 인사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밥줄을 잘랐다. 블랙리스트는 ‘21세기판 국민보도연맹’이었다.

한편, ‘지역 차별’과 ‘여성 차별’ 역시 한국 보수의 무기였다. 박정희 정권 이래 한국 보수는 호남지역을 노골적으로 차별했고, 그도 모자라 1980년 봄에는 그곳에서 학살극을 저질렀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를 퍼뜨리며 재집권을 기도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원이 ‘대국민 심리전’ 명목으로 자행한 댓글과 게시글 공작의 내용은, 모두 빨갱이(종북)·호남·가부장(여성 혐오) 등 한국 보수의 전통적인 차별담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자유한국당의 ‘성소수자 차별(혐오)론’은 그 내용만 달라졌을 뿐, 방법은 의구한 것이다. 이들의 젠더적 감수성 부재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정치가 한국인의 일상에 남긴 상처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빨갱이(종북), 호남, 여성, 동성애자로 낙인찍히고 소외받을까봐 공포에 떨었다. 헌법상의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는 공염불이었다. 이러한 공포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의 차별담론을 더욱 내면화하고 강화하는 역설로 이어졌다. 내가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기존의 차별담론을 내면화했던 것이다.

이는 곧 한국 보수 기득권의 강화로 이어졌다. 또 낙인과 소외에 대한 공포는 한국인들의 사회적 관계를 타락시켰다. 어린아이들마저 ‘인맥’ 운운하며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인맥’과 ‘부(富)의 정도’에 따라 맺어지거나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은, 결국 차별과 소외·천시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파탄은 전세계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정치’는 어디서 기원한 것인가? 바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다. 일제강점기는 일본인-조선인 간의 민족 차별과 더불어 불령선인이라는 블랙리스트가 엄연했다. 국가보안법의 모태인 치안유지법이 그것을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차별, 소외, 공포는 모두 식민지적 감수성이다. 따라서 한국 보수의 차별정치는 일제에서 기원한 것이며, 차별정치야말로 ‘100년의 적폐’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적폐청산은, 20세기 이래 ‘한국말 쓰는 일제 식민통치자들’이 자행한 ‘차별정치’와 결별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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