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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시절 의열단, 조선의용대, 민족혁명당 등을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초대 국가검열상을 지낸 약산 김원봉(오른쪽)과 첫 부인 박차정(왼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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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 지난 광복절 경축식, 정부는 건국훈장 63명, 건국포장 16명, 대통령표창 49명을 포상하고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국가보훈처는 1949년 이래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사람은 총 1만4779명에 이른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소장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언명은 공허하기만 했다. 마땅히 나와야 할 이름이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산 김원봉. 강점기, 일제가 분노와 공포로 몸을 떨던 이 조선 독립영웅의 족적은 뚜렷하기만 하다. 국가보훈처 발행 달력의 기념일들만 봐도 그렇다. 1월5일(1924년 김지섭 의거), 1월12일(1923년 김상옥 의거), 9월12일(1921년 김익상 의거), 9월14일(1920년 박재혁 의거), 10월10일(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11월9일(1919년 의열단 조직), 12월28일(1926년 나석주 의거). 약산과 그가 조직한 ‘의열단’이 연루된 기념일을 제외하면, 보훈처 달력은 일순 휑뎅그렁해진다. 마치 공모라도 한 듯 남과 북이 모두 자기 역사에서 지우려는 사람, 하지만 영화 <암살>, <밀정> 등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부활하는 사람. 광복 이후 어이없게도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멱살 잡히는 수모를 당한 것, 북한 정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하지 않은 것, 북한에서 숙청당한 것 등은 이 독립영웅에 대한 안타까움의 일단이다. 약산의 가족들이 겪은 고난은 잔혹하기만 했다. 한국전쟁 시기, 밀양의 약산 가족들은 ‘월북 김원봉의 가족’으로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다. 세월이 흘러 1960년 4·19혁명 이후, 다행히 죽음을 피했던 다섯째 동생 김봉철씨가 죽은 네 형제의 유골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른다. ‘밀양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에서 책임자 처벌과 유족 보상을 정부에 요구한다. 그러나 5·16 쿠데타 이후 김봉철씨는 특수반국가행위자로 기소됐고, 1심에서 무기징역을, 2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는다. 밀양 피학살자조사대책위의 유골 수습과 장례식, 책임자 처벌 요구가 북한을 찬양하고 이롭게 한 행위라는 판결이었다. 1986년, 김봉철씨는 화병으로 숨을 거둔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봉철씨 재판에 대해 재심을 권고한다. 2010년 부산고법은 김봉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2012년 대법원은 김봉철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모두 19억원을 배상하라”고 확정한다. 2년 전인 2015년 광복절,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에스엔에스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약산은 잊혀졌다. 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에 마지막 국무위원이기도 했지만, 의열단 단장이란 직책만 알려지고 있을 뿐, 일제시대 거의 모든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었다는 활약상은 가려졌다.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그만큼 빈약해진 것이다. (…)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고, 항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 2019년은 3·1 항일독립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대한민국 100년 기념사업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사업에 진력하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썼듯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에 마지막 국무위원을 역임한 약산 김원봉은 여전히 서훈에서 제외되고 있다. 약산과 약산에 대한 기억은, 오롯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 담겨야 한다. 약산에 대한 서훈이 시행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 불세출의 독립영웅을 뺀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약산이 빠진 항일독립투쟁은 없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개관 전, 약산 김원봉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기를 희망한다. ‘서훈’이, 약산에 대한 기억의 목록에 추가되기를 원한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의 영전에 술 한잔 바칠 수 있기를. 그것이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그에게 보여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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