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 5년 전 나는 위암 4기로 진단받았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위를 절제해야 했고, 암이 나팔관까지 전이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8개월 정도 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50㎏대 후반이었던 몸무게는 43㎏까지 빠졌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 간판만 봐도 구토가 올라오고, 면역력이 약해져 면장갑을 끼고 물건을 집을 만큼 하루하루가 불편했지만, 점차 몸이 회복되면서 몸무게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건강도 되찾았다고 느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복부 통증으로 정기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결혼식을 딱 1년 앞둔 때였다. 재발한 암이 다른 부위로 많이 퍼졌다고 했다. 장 외벽에 부스럼처럼 따닥따닥 붙은 암세포들은 수술로도 떼어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수술은 포기하고, 내 기억에 고통으로 남아 있는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새로 시작한 신약 치료 덕분에 나는 1년의 고비를 넘겼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들 결혼식에서 가족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치료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부담이 너무 크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들어둔 실비보험이 있지만 이마저도 지난 1년여 항암치료를 받으며 거의 바닥이 났다. 남편이 간병을 위해 직장을 집과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서 가계수입도 줄었다. 암투병 중인 내가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짐을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이 치료를 이어가는 일이 정말 막막하게 느껴진다. 암 병동에서 만나는 다른 위암 말기 환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요즘 다른 암종은 신약도 많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와 같은 위암 말기 환자들은 현재 이 치료제 외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 게다가 이 치료제는 허가를 받은 지도 몇년이 지났고, 나도 일년이 넘게 이 약을 써왔지만 여전히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의아할 뿐이다. 정부 입장에서 몇개월은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말기 암 환자, 특히 재발 암 환자들에게 이 시간은 아들의 결혼식과 같은 일생일대의 순간을 앞두고 암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다. 새 정부가 우리와 같은 환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정책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될까 조바심도 난다. 그저 나와 같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특히 말기 위암 환자들을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펼쳐주기를 간곡히 소망해본다.
왜냐면 |
[왜냐면] 어서, 부디, 암환자 신약 보험 적용해주길 / 정미영(가명) |
정미영(가명)
경기도 부천시 5년 전 나는 위암 4기로 진단받았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위를 절제해야 했고, 암이 나팔관까지 전이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8개월 정도 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50㎏대 후반이었던 몸무게는 43㎏까지 빠졌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 간판만 봐도 구토가 올라오고, 면역력이 약해져 면장갑을 끼고 물건을 집을 만큼 하루하루가 불편했지만, 점차 몸이 회복되면서 몸무게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건강도 되찾았다고 느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복부 통증으로 정기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결혼식을 딱 1년 앞둔 때였다. 재발한 암이 다른 부위로 많이 퍼졌다고 했다. 장 외벽에 부스럼처럼 따닥따닥 붙은 암세포들은 수술로도 떼어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수술은 포기하고, 내 기억에 고통으로 남아 있는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새로 시작한 신약 치료 덕분에 나는 1년의 고비를 넘겼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들 결혼식에서 가족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치료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부담이 너무 크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들어둔 실비보험이 있지만 이마저도 지난 1년여 항암치료를 받으며 거의 바닥이 났다. 남편이 간병을 위해 직장을 집과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서 가계수입도 줄었다. 암투병 중인 내가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짐을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이 치료를 이어가는 일이 정말 막막하게 느껴진다. 암 병동에서 만나는 다른 위암 말기 환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요즘 다른 암종은 신약도 많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와 같은 위암 말기 환자들은 현재 이 치료제 외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 게다가 이 치료제는 허가를 받은 지도 몇년이 지났고, 나도 일년이 넘게 이 약을 써왔지만 여전히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의아할 뿐이다. 정부 입장에서 몇개월은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말기 암 환자, 특히 재발 암 환자들에게 이 시간은 아들의 결혼식과 같은 일생일대의 순간을 앞두고 암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다. 새 정부가 우리와 같은 환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정책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될까 조바심도 난다. 그저 나와 같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특히 말기 위암 환자들을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펼쳐주기를 간곡히 소망해본다.
경기도 부천시 5년 전 나는 위암 4기로 진단받았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위를 절제해야 했고, 암이 나팔관까지 전이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8개월 정도 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50㎏대 후반이었던 몸무게는 43㎏까지 빠졌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 간판만 봐도 구토가 올라오고, 면역력이 약해져 면장갑을 끼고 물건을 집을 만큼 하루하루가 불편했지만, 점차 몸이 회복되면서 몸무게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건강도 되찾았다고 느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복부 통증으로 정기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결혼식을 딱 1년 앞둔 때였다. 재발한 암이 다른 부위로 많이 퍼졌다고 했다. 장 외벽에 부스럼처럼 따닥따닥 붙은 암세포들은 수술로도 떼어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수술은 포기하고, 내 기억에 고통으로 남아 있는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새로 시작한 신약 치료 덕분에 나는 1년의 고비를 넘겼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들 결혼식에서 가족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치료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부담이 너무 크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들어둔 실비보험이 있지만 이마저도 지난 1년여 항암치료를 받으며 거의 바닥이 났다. 남편이 간병을 위해 직장을 집과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서 가계수입도 줄었다. 암투병 중인 내가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짐을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이 치료를 이어가는 일이 정말 막막하게 느껴진다. 암 병동에서 만나는 다른 위암 말기 환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요즘 다른 암종은 신약도 많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와 같은 위암 말기 환자들은 현재 이 치료제 외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 게다가 이 치료제는 허가를 받은 지도 몇년이 지났고, 나도 일년이 넘게 이 약을 써왔지만 여전히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의아할 뿐이다. 정부 입장에서 몇개월은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말기 암 환자, 특히 재발 암 환자들에게 이 시간은 아들의 결혼식과 같은 일생일대의 순간을 앞두고 암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다. 새 정부가 우리와 같은 환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정책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될까 조바심도 난다. 그저 나와 같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특히 말기 위암 환자들을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펼쳐주기를 간곡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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