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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7 18:33 수정 : 2017.08.07 19:08

이상수
철학연구자·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박찬주 2작전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학대로 나라가 소란하다. 사령관 부부는 공관병의 손목에 전자팔찌를 채우고 호출했다. 음식 만들기, 텃밭 가꾸기, 골프공 줍기, 사령관 자식 바비큐 파티 도우미 등 집안의 온갖 허드렛일에 공관병을 가내노비처럼 부려먹었다. 사령관의 ‘사모’가 주로 부려먹었다고는 하나, 이를 방치한 사령관의 책임이 더 크다. 장병들과 생사를 같이해야 하는 대한민국 군의 최고 수뇌가 이런 수준이라니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

<여씨춘추>에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중국 전국시대에 정(鄭)나라가 송(宋)나라를 쳤다. 송나라의 장군 화원이 군사를 이끌고 접경지대로 달려갔다. 전투가 벌어지기 하루 전날 화원은 양을 잡아 병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그러나 장군의 마부인 양짐은 양고기 잔치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마부는 차별당했다. 다음날 전투가 벌어졌다. 장군 화원을 전차에 태우고 고삐를 잡은 양짐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어제 일(양고기 잔치)은 장군이 고삐를 잡으셨습니다. 오늘 일은 제가 고삐를 잡습니다.” 이렇게 외친 양짐은 순식간에 장군의 전차를 정나라 진영 한가운데로 몰고 들어갔다. 지휘자가 사라진 송나라의 군대는 즉각 궤멸했고 화원 장군은 정나라 사병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갖은 수모를 당했다.

군 수뇌부라면 섬뜩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화이다. 부품 하나만 망실해도 총기는 발사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장병과 군무원에서 지휘관까지 군의 모든 구성원들이 일심단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전투력에 누수가 생긴다. 장군이 마부 한 사람을 차별한 일로 인해 송나라 군대는 궤멸하고 장군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하물며 공동체 수호를 위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중인 장병의 인격을 발끝까지 모독하고 노예 취급한 장군이 버젓이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군의 사기와 전투력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 일화에 대한 풀이에서 청나라 학자 필원(畢沅)은 이런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옛날에 훌륭한 장군의 용병술은 이러하다. 어떤 사람이 술 한 병을 선물로 장군에게 바쳤다. 그러자 장군은 이 술을 병영 앞 강물에 모두 따른 뒤 사병들로 하여금 강물을 함께 마시도록 했다. 한 병의 술을 강물에 풀어서 어떤 술맛이 나겠는가마는, 삼군의 병사들은 이 일로 인해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으니, 술맛 이상의 맛이 그이들에게 전달된 때문이다.”

<오자병법>을 쓴 오기 장군은 사병에게 등창이 나면 직접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치료해주었다. 이를 본 사병의 어미가 통곡을 했다. 그 사병의 아버지 또한 장군이 등창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덕에 전장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전사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사병들과 똑같은 막사에서 함께 뒹굴었다. 인도 원정 때 사막에서 길을 잃어 모두 목이 타들어갈 때, 사병들은 대왕만이라도 살리려고 모든 수통의 물을 긁어모아 대왕에게 건넸다. 대왕은 “사병들이 목말라 고통을 겪는데 나 혼자 물을 마실 수는 없다”며 수통의 물을 모래에 부은 뒤 사병들과 똑같이 고통을 감내하며 끝내 사막을 벗어날 길을 찾아내었다.

전통시대의 관점이기 때문에 장수 중심으로 사태를 보는 한계가 있지만, 동서고금에서 위대한 장군들과 관련한 일화는 모두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자기 군사를 충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이는 지휘관 자격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술 한 병을 푼 강물에서 병사들이 느낀 맛은 아마도 사람의 맛, 짙은 인간미였을 것이다.

우리 군의 지휘관들도 틀림없이 사관생도 시절 지휘관의 품성, 권한과 의무, 명예로운 행동 등에 대해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찬주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군은 뼈를 깎는 자성을 해야 한다. 전쟁도 사람의 일인 이상,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군대가 강군이 될 리는 없다. 이번 사태는 지휘관의 본분을 잊고 오로지 줄타기에만 전념해 수뇌부에 오른 장군이 군의 전투력을 얼마나 심각하게 좀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를 ‘장군 리스크’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장군의 가족까지 사병 위에 군림하고 장병을 노예 취급하는 군에서 병사들이 어떤 리더십을 배울 것이며, 어떤 마음으로 군 생활을 하겠는가. 장병 간 구타와 탈영과 총기사고 등이 어찌 이런 ‘장군 리스크’와 무관할 것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무리 상명하복이 원리인 군이라 하더라도 지휘관이 장병을 자의적으로 사병(私兵)화할 수 없도록 복무규정을 엄격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며, 이를 어긴 지휘관에 대해서는 기강 확립 차원에서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묻도록 규정에 명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실추된 우리 군의 명예 회복과 군대 문화 쇄신의 성패 여부는 오로지 ‘박찬주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온 국민이 착잡하고 암담한 심경으로 우리 군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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