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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31 18:08 수정 : 2017.07.31 19:05

황철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서울지하철 2호선 승무원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지난해 구의역 참사 이후 시민의 안전을 다루는 업무만큼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비껴갔다.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정비하는 업무조차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간섭과 지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책무를 떠넘겼다. 1년이 지난 지금, 박 시장은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 2435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환영할 일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불거진 정규직화의 방향과 방식, 이행경로에 대한 논의가 매듭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 시장의 제안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무기계약직이라는 별도 직군인 ‘중규직’을 신설해 놓고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비정규직 계약직임에도 ‘정규직’이라고 주장했다. 임금체계와 승진, 각종 복리후생비의 차별이 분명하지만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으로 만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박 시장의 제안으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자회사 신설을 통한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확산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전기도 마련했다. 그동안 공공부문은 무분별한 자회사 신설로 고용의 질을 저하시키고 비정규직을 확산시켜왔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일부 분야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면피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열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민간부문까지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8월까지 마련한다고 한다. 인천공항공사의 사례가 시금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논의 흐름을 보면 재원 마련과 기존 계약관계, 재계 반발 등을 이유로 전면적인 정규직 전환보다는 무기계약직 전환 등 하청업체 소속에서 자회사 소속으로의 신분 변화가 유력해 보인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모델은 박 시장의 제안에서 출발해야 한다. 분명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두 번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 제로 시대의 취지와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다.

박 시장도 아직 선언만 한 상태다. 구체적인 이행경로와 방식은 뒤로 미뤄놓고 있다. 정규직 내부와 취업준비생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구의역 참사 이후 가장 먼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농성을 주도했던 당시 유성권 서울메트로 비정규직 지회장은 “노동자는 하나다. 함께 살자”는 다짐을 상기시켰다.

박 시장은 3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한발 앞선 정책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박 시장의 주요사업을 큰 틀에서 따라가는 상황이라 ‘박원순표 공공부문 정규직화 모델’은 더욱 주목된다. 최근 박 시장은 재임 중 가장 잘못한 일로 구의역 참사를 꼽았다. 처음부터 안전업무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며 때늦은 후회를 한 것이다. 세상이 바뀐 틈을 활용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 기회가 박 시장에게 다시 주어졌다. ‘박원순표 모델’의 성공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와 정책경쟁을 한다면 국민도 정권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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