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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6 18:30 수정 : 2017.06.26 19:10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

어느 그릇에 물을 담느냐에 따라 물의 형태가 다르듯이, 말이라는 것도 시간, 장소, 그리고 어느 계기에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천양지차를 띠게 마련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발언의 여진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청와대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9일 “문 특보에게 오늘 책임질 만한 분이 앞으로 있을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하게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트럼프 행정부와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소속 한반도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한-미 군사동맹 기조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말끔히 거둔 것은 아닌 듯하다.

우선 이들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망) 배치 여부를 향후 한-미 동맹의 방향과 깊이 그리고 속도를 재는 척도로 삼으려고 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정 실장의 발언은 사드 철회가 없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수락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초반부터 시련에 봉착할 것이다. 중국의 전방위 압력이 가중되면서 한-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 결과 중국과 교역해온 기업들과 관련 종사자들부터 그 여파가 발생할 것이다.

사드 배치 거부의 경우, 당장 동맹에 금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군사협력, 경제협력에 막대한 타격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도 잠시 나왔다. 샤프(무기 및 군사장비)는 있는데 샤프심(대북 군사정보 자산 및 연합 군사전략)이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묘안이 없다면, 대비책 마련이 정책결정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전략적 모호성이 능사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사드 수용 여부가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해서 피해 규모를 얼마나 줄이느냐로 봐야 옳다.

진실로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훈수에 휘둘려 우리 ‘외교의 중심성’마저 실종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다소 투박하게 표현되었기는 해도 문정인 ‘교수’의 주장은 마치 신학(神學)으로 여겨져온 동맹의 오랜 관성에 충격을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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