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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2 18:35 수정 : 2017.06.12 18:58

박재우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힐러리 클린턴 캠페인에서 일했던 나는 지난해 11월 선거가 끝나고(처참한 패배 후) 다음 진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금의환향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정치권의 스카우트를 받는 예상과는 달리 선거에서의 패배는 나를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만들어 주었다. 석달 동안 계속되었던 ‘이제 뭐 하지?’라는 물음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는 기쁨은 뒤로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후,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석달 가까운 시간 동안 일했다. 이긴 선거 뒤에도 이러한 물음은 계속된다. ‘이제 뭐 하지?’ 조금은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유롭게 내 삶을 즐기기에는 한국 사회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나도 모르게 죄책감을 부여한다.

“글쎄, 나는 1년 정도 쉬면서 실업급여 받으며 대학원 준비나 좀 하려고”라고 미국 선거 뒤에 말했던 미국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최근에 연락해본바 그는 대학원 진학은 뒤로하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지급되는 실업급여 덕분에 안정적인 구직활동을 했고, 지금은 아이들에게 정치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반면, 나는 또다시 선거 뒤에 실업자가 되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박원순, 이재명 시장의 청년수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때 당시에 모두 합쳐 최대 300만원 정도의 청년수당에 대해 ‘악마의 속삭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수호자들은 ‘노오력’만이 살길이라며 대통령의 최측근 자녀에겐 대기업까지 동원해 35억원을 들여 자아 성취의 탄탄대로를 마련해주었다.

그런 이중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물론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300만원이라는 청년수당이 아깝고 권력의 최측근에게는 손쉽게 35억원을 지원하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개인의 역량, 즉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공공부문 80만개 일자리 창출 같은 청년정책으로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정규직 확대, 실업급여, 청년수당 같은 사회안전망은 경제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낳는다. 심리적으로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에서의 동료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그에게 질문했을 때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반면에 한국에서 청년들에게 “너 앞으로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은 부담이다.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부담도 다르게 작용한다. 가족 부양, 학자금 대출, 생활비 등 필자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구직활동 불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한국 사회 속 갑들은 그러한 불안을 먹고 산다.

지금 기성세대가 청년이었던 시대에는 당연히 더 나은 삶을 살 거라는 기대에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희망을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심리적인 영향은 사람들을 ‘노오력’으로 이끌 수도 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지금 젊은 세대는 6·25 전쟁 이후 부모 세대보다 더 못 살게 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우리 청년들 삶의 사회안전망 확대, 강화가 필요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노동이 살아있는 나라’에 젊은이들이 얼마나 열광적이었는지, 그럼에도 빨간 정당의 집권을 피하기 위해 1번을 찍었다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는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로 시급 1만원을 받으면서 정말 아르바이트 수준의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그것이 학자금 대출이나 높은 월세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취업 준비를 위한 비용으로 쓰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단지 그것뿐이다. 불안 자체는 우리가 싸워 이겨내야 할 존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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