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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5 18:41 수정 : 2017.06.05 20:35

정한빛(가명)
현역 장교 어머니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병사들 우리 처부(군대 사단사령부 내의 조직) 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명령을 받들다)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 한 적 없습니다.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 주십시오.’(고 오혜란 대위 유서에서, 2009년 http://www.ohmynews.com)

나는 대한민국 보통의 직장인이며, 자녀를 둔 엄마이다. 이 글은 ‘엄마’라는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쓴다. 2017년 5월23일 ‘성폭력으로 자살한 해군 A대위’ 뉴스에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이 사건으로 여성계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국방부, 민간인권단체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해군 A대위 사건을 수사하라! 군대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기존 대책 및 재판 종결된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공개요구서를 발표했다.

나는 이 사건에서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성폭력을 포함해 군대 내에서 왜 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군대라는 닫힌 집단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의 실상과 그 해법과 이 모든 것을 포괄한 성찰은 가능한 것일까. 필자는 여성이고, 가족 중 군대를 다녀온 이들을 통해서 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이다. 나는 그 간접경험을 통하여 성찰한 것을 쓰고자 한다. 필자의 자녀는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사관‘학교’인데 ‘학교’보다는 ‘군대’에 더 방점을 둔 교육과정과 아이들을 군인처럼 다루는 교육자들의 태도 때문에 우리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고등학생들은 이른바 ‘인재’라고 할 만한 아이들이다. 이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7월말~8월초에 사관학교에서 실시하는 시험장을 가보면 된다. 무려 20 대 1을 넘나드는 경쟁을 통과해야 하고 수능 등급도 높아야 한다. 1, 2차 시험에 합격하고도 가입교식까지 치러야 한다. 가입교식을 치르는 동안 탈락자가 생기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생도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를 자랑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런 인재를 뽑은 후 사관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떤지, 이들을 정말 인재로 키워내는 교육자로서의 마인드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관학교의 학부모가 되어 학교에 감사한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훈육관님들의 노고에 존경을 보내고 싶은 일도 많았다.

한편 사관학교의 특성상 다양한 행사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학교 모습은 ‘학생’(생도)들이 꽃이고 행사의 주인공들이어야 한다. 이에 반해 사관학교 행사의 주인공은 ‘높은 계급’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많다. 아이들은 그들을 위해 옷을 차려입고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분열식을 한다.(직속상관에 대한 예우라고는 한다!) 학부모의 존재는 그야말로 찬밥이다. 행사를 치르는 관계자들은 그 자리에 오게 되어 있는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볼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을 닦달하고 학부모는 옆으로 비켜주기를 강요한다. 아이들이 잘 보이는 자리는 또 다른 높은 계급의 것이다. 입학식, 졸업식을 비롯한 행사는 그 ‘계급 높은’ 자들을 빛내기 위한 통제되고 권위의식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임관을 하고 아이가 맡은 자리에서 일부 상사들에게 받은 모욕적인 언사 및 대접은 흔히 있는 일인 듯 나도 포기가 되었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너무 질 낮은 처사였다. 군대에서 계급이 낮다는 것은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지 그것으로 모욕을 줄 일은 아닐 것이다. 군인의 덕목으로 강조하며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명예’는 말이나 강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명예가 중요하다면 명예롭게 일하게 하고 명예롭게 대하고 명예롭게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사건의 핵심은 ‘명예’를 상실한 상위 계급이 그 하위 계급의 여성에게 가한 전형적인 군대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인 A대위가 4년의 대학과정을 마치고, 다시 6주간의 험난한 과정을 이수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녀가 군인의 중요한 덕목인 ‘명예’를 중시하지 않았다면 그 험한 훈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과정을 통과했고 수료식에서 ‘명예’로운 군인이 된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고 대위로도 진급한 그녀가 (세상에!) 자살을 해 버렸다.

나는 그녀가 상관에게 당한 성폭력을 자살로 우리 사회에 항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고 묵직해짐을 느꼈다. 그녀가 가졌을 모멸감, 무력감, 두려움, 분노가 벼락처럼 다가왔다. 성폭력 가해자인 그 대령은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명예를 알기는 한 걸까? 그는 인간의 고귀함을 알고 있기는 한 걸까? 대령의 그 행위는 ‘나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오만과 낮은 계급의 부하에게 ‘명예 따위 없다’는 무지가 작동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무지는 대령 개인의 문제인가. 몇 년 전에 일어난 ‘심 중위 사건’, ‘오 대위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죽음으로 성폭력, 가혹행위를 알리고자 했다. 그 사건에서 군대는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그 사건의 위중함을 성찰했는가. 가해자를 엄벌에 처했는가. 가해자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했는가.

이런 반복되는 사고를 접하면서 나는 자녀가 사관학교에서 경험했던 군대 문화를 다시 반추하게 되었다. A대위의 부모님의 심정을 감히 내가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군인 자식을 둔 엄마의 심정은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그분들의 아픔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녀에게 예쁘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있을 텐데, 그냥 ‘A대위’라는 명칭을 쓰는 것도 송구하고 힘들다. 이 글은 거창한 명분이나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군인의 엄마로 소박한 바람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사람을 사람답게 쓰라, 인재를 인재답게 키워라.’ 이 성폭력 문제에 어떤 해답을 줄지, 어떻게 풀어갈지, 두 눈 부릅뜨고, 같은 입장에 놓인 엄마들과 함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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