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카치아피카스
전남대 5·18연구소 방문 교수·<한국의 민중봉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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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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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인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는 불굴의 용기와 끈질긴 조직력, 사심 없는 헌신, 그리고 결사항쟁의 의지로 기억되고 있다. 슬프게도 그는 1980년 5월27일 새벽 29살의 꽃다운 나이에 광주항쟁 최후의 저항거점이었던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군사 독재에 맞섰다.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있는 그의 묘소는 많은 추모객이 찾는 명예로운 장소다. 그는 사후에 오히려 훨씬 더 거인이 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1979년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1981년)에 헌정된 곡이다.
그러나 윤상원을 마음 깊이 기리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가장 영예로운 장면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미래를 더 잘 준비하기 위해서, 윤상원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려 한다. 이는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1980년 5월26일, 해방도시 광주는 철저히 고립된 채 군부에 의한 최후 반격을 앞두고 있었다. 윤상원은 시민군 대변인 자격으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 일간지 <볼티모어 선>의 기자로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전한 브래들리 마틴 기자를 통해서였다. 윤상원은 편지에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전두환의 무력 진압을 막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마틴은 윤상원의 메시지를 글라이스틴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정작 글라이스틴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날 오전, 광주에는 미국 항공모함이 한국 영해에 진입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윤상원이 실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개적으로는 미 항공모함이 민주화 투쟁에 나선 광주 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온다고 말했다. 시민군의 사기를 북돋우려 했든, 아니면 정말 미국이 시민군을 도울 것으로 믿었든 간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의 질문들은 이렇다. 먼저, 윤상원은 정말로 미국의 지원을 바랐나? 내심이 무엇이든 윤상원은 미국이 한국 민주주의를 도울 가능성을 거듭 언급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자국의 몰염치한 ‘안보 이익’을 위해 항공모함까지 파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최근 한국은 평화지향적 정책을 약속한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시민의 힘’에 빚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뛰어난 지도자다. 지난 4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선제타격할 태세를 취했다는 위기설이 있었다. 이후 강도 높은 대화 압박 전술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있지만, 핵시설이나 미사일 기지를 겨냥한 외과수술식 국부 타격, 나아가 북한 지도부나 핵심 도시들을 공격하는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국내에서 궁지에 몰릴수록 대외적인 ‘힘의 과시’가 돌파구가 되지 않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문제를 미국과 대등하게 다룰 수 있을까? 아니면 당선 직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방문해 낮은 자세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6월 예정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980년 윤상원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한국 문제 해결의 도움을 요청할까?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북한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어야 한다. 트럼프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게 될 것이며, 이는 한국인에게 치명적 결과를 줄 수도 있다. 한국인 56%의 반대에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는 트럼프의 오만한 태도는 그가 한국의 ‘시민의 힘’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늠케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는 최선의 길은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평양과 접촉하는 것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에서 서명한 남북공동선언 중 ‘남북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 이 합의문은 남북한의 통일을 지향하며 독립된 2개국의 느슨한 연방제를 옹호한다. 문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정상회담보다 중요하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합의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양국을 공격할 수 없다는 공동선언을 할 수 있다. 남북한이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있다고 천명하고, 모든 외부세력은 한 발 물러서서 한국인들에 문제 해결의 여지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 등에 특사를 파견했다. 왜 북한에는 안 보내는가? 혹여 문 대통령의 손발이 이미 묶인 건 아닌지, 하여 박근혜 전 정부의 적대적 정책들을 파기하고, 20세기에 군사력으로 한반도를 초토화한 미국과 일본의 공격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릴 중대한 조처를 취할 시기를 놓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북한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닐까?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 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서방의 ‘정밀 타격’에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는 중동 분쟁에 개입하느라 한반도 문제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주요 강대국들에 한반도 평화 유지는 국가적 이익이 전혀 아니다. 동시에 북한 지도부는, 사담 후세인(이라크)과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의 최후에서 봤듯이,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한 기습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북한이 군비 무장을 지속하는 핵심적 이유는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햇볕정책을 펼쳐가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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