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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2 18:18 수정 : 2017.05.22 19:01

심기용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

얼마 전 육군이 동성애자 또는 성소수자 병사들을 색출하는 기획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고발되었다. 결국 30여명에 대한 인권유린적인 수사가 이뤄지던 과정에서 도주 위험도 없었던 성소수자 A 대위가 구속되었고, 지난주 재판에서 기소된 법조항의 최고형인 2년을 구형받았다. 군인이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군인이 사적인 공간에서 동성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아니 어쩌면 동성애자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2017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색출수사, 구속, 구형이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법 한 구절 때문이었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추행이라고 하니 강제성추행을 처벌하는 조항 같지만 사실은 추한 행위, 즉 ‘더러운 짓’인 동성애를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원래는 ‘계간 등 추행’이었다가 차별적인 용어 사용이라는 지적에 계간이 항문성교로 바뀌었다. 조항이 모호하게 바뀌었으나 군인의 동성 간 성적 교섭을 처벌한다는 입법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강제추행의 경우에는 군형법 제92조 1~5에서 성폭력을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6은 성폭력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법은 성폭력 피해자도 처벌받고 심지어 피해자가 없는 합의된 성관계도 처벌받는, 정말 순전히 남성 간 동성 성관계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다.

A 대위가 2년을 구형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 나라에서 미필 게이로 살아가는 내 처지가 번뜩 실감이 되었다. 설마 이 법이 아직도 유효한 법으로서 집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의 다수가 범죄자가 되면 곧바로 실직자가 되는 직업군인들인 상황에서, 사적인 성생활까지 검열하여 마구잡이로 처벌할 것이라고 생각은 해봤겠는가. 그들이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A 대위는 24일 내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고, 이 선고가 마치 나와 내 친구들 모두를 재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단순한 망상일까?

군형법 추행죄는 헌법재판소에서 3번의 위헌 여부를 심판받았다. 가장 최근엔 5(합헌) 대 4(위헌)로 비등했으나 결론적으로 모두 합헌 판결을 받았다. 그러던 중 최근 인천지방법원 이연진 판사가 1년이 채 안 되어 다시 위헌을 제청했다. 한편으로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소 발의 의원 수인 10명이 아슬아슬하게 채워져 현재 국회에서 그 조항의 폐지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 한다. 이 두 가지 흐름이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믿고, 아주 간절한 희망을 건다. 동성애가 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비과학적 통념이 만든 이 적폐를 이제는 폐지해야만 한다.

권력이 인간의 삶 일부를 형식화하고 그것에 억압을 부여하더라도, 그 억압이 곧 억압당한 사람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군대를 들어가서도 나의 정당한 성적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물론 그걸 이유로 ‘추한 죄인’이 될 생각은 더욱더 없다. 신체 욕망에 따른 성적 교섭은 몸과 정신의 건강과 깊이 관련돼 있고, 동성과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는 일은 나에겐 건강의 영역이다. 나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내게는 이것이 아름다움이고, 국가가 지켜야 할 내 인간 존엄이다. 군인 성소수자들도 다르지 않다.

다들 박근혜가 구속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 시대가 시작됐다고 좋아한다. 실로 촛불이 만든 혁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내 성적 지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검열하는 부조리를 두고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외침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군형법 제92조의6 따위의 법이 남아 있는 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말마따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 통념과 어긋나는 사람들이더라도 헌법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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