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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5 17:56 수정 : 2017.05.15 19:24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법학자로서 사회에 대해 쌓아오신 통찰을 바탕으로 새 정부에 기여하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시급한 현안 중 하나가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제약하고 있는 제도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존치되고 있는 낙태죄(형법 제27장)는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에게만 낙태의 죄를 물어 처벌하고 있습니다.

법학자로 재직하시며 쓰신 ‘낙태 비범죄화론’(<서울대학교 법학>, 제54권 제3호, 2013)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논문은 형법은 종교가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낙태 처벌이 형법의 과잉도덕화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성립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논증하며, 2010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의견조차도 ‘태아=인간의 생명’의 논리를 견지하지 않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상황을 무시하고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낙태 허용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자기결정권 등을 중대하게 제약함은 물론 여성에게 미래의 고난을 강제하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은 여성들도 거리에 서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요지입니다.

민정수석께서는 낙태 비범죄화와 12주 이내 낙태에 대한 전면적 허용을 강력하게 주장하셨습니다. 논문은 “모자보건법 제정 50주년이 되는 2023년 이내에 필자의 낙태 비범죄화 제안이 국회에서 수용되기를 희망”한다고 완결됩니다. 덧붙여 “낙태 감소는 낙태의 범죄화와 형사처벌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시기부터 지속적·체계적 피임 교육, 상담 절차의 의무화,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입양 문화의 활성화 등 비형법적 정책을 통하여 가능할 것”으로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거론하셨으며,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논문의 논거에 덧붙여 낙태죄는 사문화된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낙태죄가 사문화되었다고, 법 개정을 미루고 방치하는 동안 여성들은 병원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지며, 높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임신중절시술을 받아왔습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낙태가 범죄이기 때문에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수술을 하고 나서도 헤어진 배우자나 파트너로부터 낙태죄로 고발한다는 협박을 받습니다. 파트너가 원치 않는 아이, 가족이 원치 않는 아이, 사회가 원치 않는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도 여성이 감당해왔습니다. 또한 모자보건법에 명시된 낙태 허용 사유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한 보장이 아님을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우생학적 허용 사유를 두어 장애 여성의 임신을 ‘옳지 못한 임신’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민정수석께서 논문에서 제시하신 ‘모자보건법 개정안’ 역시 이러한 이유로 우생학적 사유를 삭제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국제인권법에서는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것을 강조하며, 2011년 유엔은 한국에서 여성의 건강과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는 낙태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임신중절에 대한 접근권은 인권의 문제이며, 처벌을 강화하여 강제로 출산하게 하는 것이 저출산 해결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임신 중단에 대한 결정을 내린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사회는 여성의 삶과 판단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회는 결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공동체가 아닐 것입니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신 후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하시며 소통하시는 모습이 많은 국민들에게 새 정부에 대한 신뢰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소통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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