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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5 17:54 수정 : 2017.05.15 19:24

문정현
신부

돌아오는 5월18일은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기습적으로 유치 신청된 강정 해군기지에 맞서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를 세운 날이 2007년 5월18일입니다. 그동안 해군기지는 완공됐습니다. 그러나 강정은 여전히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 깃발을 내리지 않았고, 생명평화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마을을 살려 달라’던 주민들의 호소에 일주일치 짐을 싸서 찾아온 강정입니다. 이곳에서 어느덧 일곱 번째 봄을 맞고 있습니다. 그때 주민들은 국가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주민의 90% 이상이 해군기지에 반대했지만 ‘국책사업’은 힘이 참 셉니다.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농지를 강제수용하고, 법의 보호를 받으며 막무가내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제주도민과 전국, 세계가 강정 주민과 연대해 맨몸을 던져 싸웠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700명을 연행하고, 60명을 구속하고, 3억원의 벌금을 물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34억5천만원의 구상금까지 청구했습니다.

2017년 트럼프 취임과 함께 미국의 최신 전략무기인 줌월트가 배치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이지스함급 미국 군함이 제주해군기지에 기항했습니다. 그동안 국가는 “미국을 위한 기지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정작 미군 배치 소식에는 책임지고 해명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50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정부는 늘 그랬습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가족을 만난 이래 농민, 투쟁하는 노동자, 매향리 미군 폭격장, 두 여중생의 죽음, 대추리, 용산참사, 4대강, 세월호 등 국가권력에 의해 억압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목격했습니다. 강정의 10년도 똑같았습니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있는 성주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봅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강행하며, 저항하는 주민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정부의 힘을 어떻게 주민들이 이길 수 있겠습니까?

2017년 5월9일, 촛불의 힘으로 쟁취한 투표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원칙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권력이 바뀌었다고 해서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민중의 힘과 희망을 배반하는 일을 종종 목격해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소성리 주민들이 공권력의 위협 속에서 불안한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뽑는 것에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거대 권력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이웃의 외침을 크게 들어야 합니다. 연대해야 합니다. 더 이상 국가의 이름 아래 국민이 희생되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랍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 3652일. 누군가는 “이제 해군기지가 완공되었으니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80이 넘은 내 몸뚱이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니라 몸을 따라야 하는 나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마음은 저기를 가리키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슬픈 마음이 듭니다. 아픈 강정이라 떠나지 못하고, 함께 버티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어지럼증에, 무거운 몸에 좌절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 버텨온 10년이 아니고, 또 함께 가야 할 10년이기에 마음만이라도 굳게 먹자고 매일매일 다짐합니다.

해군기지 반대투쟁 3652일. 까마득한 시간, 수많은 눈물과 웃음이 떠오릅니다. 그동안의 10년은 우리에게 아픔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싸워나갈 힘을 쌓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구럼비와 할망물을 기억하고, 강정 댄스를 추고, 뙤약볕 아래 함께 걷던 모든 이들과 함께 강정의 생명평화를 만들어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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