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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8 18:29 수정 : 2017.05.08 19:31

김봄희
탈북인

나는 한국에 온 지 9년차 되는 새터민, 탈북인, 탈북민, 탈북자 혹은 북한이탈주민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나와 같이 북에서 온 사람들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럿이지만, 다 맞는 호칭이다. 그러나 그 단어들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새터민이라는 말은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소거되는 것 같다. 그저 장소를 옮긴 사람 같다. 탈북인, 탈북민, 탈북자는 같은 단어 뒤 한자씩 붙는 인, 민, 자의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인은 개인을, 민은 군집의 느낌을 준다. 자는 북한에서는 좋지 않은 호칭으로 ‘놈 자’(者)를 붙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북한이탈주민의 이탈이란 단어는 일탈의 느낌을 들게 한다. 결국 어떤 호칭도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말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호명이란 김춘수의 시 ‘꽃’처럼 불러주어 주체가 되기보다 대상을 규정하고 꼼짝 못 하게 가두는 도구와 같다.

며칠 전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탈북자 3천명의 망명 선언’ 뉴스 제목에 깜짝 놀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남한 내 탈북자 3천명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해외로 망명하겠다는 내용인데,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정말 이들의 주장처럼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탈북인들이 가차 없이 사지로 내몰릴 것인지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이내 ‘그 또한 시간 지나면 알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망명을 원하는 탈북인이 3천명이나 되는지, 그들 모두가 자신의 명예와 정체성을 드러내며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는 것인지 정녕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는 북한보다 더 무서운 나라 아닌가. 그러나 또 한편 불안한 것은 “우리를 시끄러운 사람들로 보면 어떻게 하지?” 하는 자기 검열이다. 탈북인으로서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집단주의적인 연대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혈질 우리 엄마는 바로 저들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다수의 탈북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저렇게 폭탄선언을 하는 건가 야속한 마음을 전한 모양이다. 다수의 탈북인들은 목숨을 걸고 넘어온 한국 땅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자유의 달콤한 맛을 만끽하며 행복하기를 원한다.

나는 북한에서 가난이란 현실적인 문제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남으로 넘어왔지만, 남한 사회는 다른 방식의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다. 남한 친구들처럼 진로를 위해 여러 공부를 하고 영어도 배워야 했다. 이제 남한 생활 9년차가 되니 서울의 복잡한 길도 잘 찾아다니고 진녹색 여권을 가슴에 품고 다른 여러 나라를 쏘다니게 되었다. 북한 사투리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건 녹록지 않다. 가끔 내 친구와 북한에서 이렇게 죽기 살기로 살았으면 국가혁명을 완수했을 거라고 농담을 한다.

남북이 교류를 못 하는 현실에 어쩔 수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탈북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북한이 핵을 쏠 건지 말 건지 물으면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모르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할 수 있다. 남에서 쌀이 오면 쌀값이 떨어져 가난한 사람들도 쌀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쌀자루로 옷을 만들어 입고 우산도 만들어 쓰고 다녔다. 비 오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등판에 ‘대한민국’ 네 글자가 커다랗게 쓰인 자루 비옷을 입고 거리에서 노닐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탈북인들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대상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훗날 내 아이에게 탈북인들의 정착에 관한 애환을 전설처럼 이야기해주며 그 특별함이 축복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우리가 분단이라는 삶에 흔들리고 이념에 흔들리며 골이 아팠어도 주섬주섬 자아를 찾아 상처 위에 소박한 꽃을 피워 왔노라고 이야기하는 날을 기대한다. 이 선거가 끝나고 나면 며칠간 일어난 탈북자 논란을 사람들이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나는 남한에 와서 두 번째 투표를 했다. 탄핵에 이어 탈북인까지 논란이 되는 혼란한 시국 속에 분단 사회에 평화와 좋은 변화가 오기를 바란다. 투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거지만, 내게는 ‘한국인’이 되어 지도자를 뽑는, 생애 특별한 소중한 사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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