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당동 5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병역거부자 116명이 병무청을 상대로 낸 병역기피자 인적사항 인터넷 공개 집행정지 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병역거부자들이 낸 본안 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없게 됐다. 지난 3월 병역거부자들은 “민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이들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찍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병역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가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전에 왜 잘못되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병무청 누리집에 나오는 공개 처분의 목적을 보면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병역기피 발생 예방 및 성실한 병역 이행을 유도하여 (중략) 병역 이행 문화를 확산 도모하고자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병역거부자는 해마다 500여명씩 발생하고 있다. 그들은 징역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무죄 주장의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최근 법원도 월중 행사처럼 무죄 선고로 응답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기피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는 대한민국에 없다. 병역거부여서 호의적인 판결이 가능한 것이다. 법은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또 거부자가 실명 공개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부자에 대한 실명 공개가 입법의 목적이나 취지를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무청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거부자들이 인터넷 공개에 겁을 먹고 병역을 이행하리라고 생각하는지, 단 한 건이라도 이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면 이를 공개해 공개의 실익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기피자 실명 공개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묘하게 현실과 겹친다. 그 시초는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시대, 강제 입영된 병역거부자들이 구타로 온몸이 멍으로 만신창이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충남 홍성군 읍사무소 병사계 직원이 거부자의 집 담기둥에 ‘기피자의 집’이라고 페인트칠을 한 것이 효시다. 망신을 주어서 따돌림을 당하게 했던, 미개한 원시 공동체에서나 사용한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 그 창피 주기 방식이 그 당시 통치자의 딸이 집권을 하고 있던 2015년에 입법되고, 2016년 12월 병무청 누리집 신상 공개가 시작됐다. 같은 내용에 법의 옷을 입혀서 재단장시켰는데, 이제는 페인트칠이 아니라 화면에 띄워서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5천만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아버지 시대에는 다행히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행위여서 페인트칠 한 건으로 중단되었는데, 그분의 따님 통치자는 징역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누구나 돌을 던지도록 표적을 만들어 주었다. 거부자는 대를 이은 병역거부로 징역을 살고 있고, 그 대를 이은 통치자도 결국 감옥의 한 지붕 밑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행여 징역의 아픔을 느껴 본들 결자해지는 불가능하다. 남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픈 것이 이치임을 모두가 아는 세상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병무청 누리집 화면에서 병역거부자의 실명이 사라진 세상에 살고 싶다. 예비 병역거부자를 둔 아버지이기에 조급한 마음을 떨치기가 힘이 든다.
왜냐면 |
[왜냐면] 대를 이은 인권침해, 병역거부자 신상공개 / 정재영 |
정재영
서울 중구 신당동 5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병역거부자 116명이 병무청을 상대로 낸 병역기피자 인적사항 인터넷 공개 집행정지 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병역거부자들이 낸 본안 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없게 됐다. 지난 3월 병역거부자들은 “민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이들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찍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병역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가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전에 왜 잘못되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병무청 누리집에 나오는 공개 처분의 목적을 보면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병역기피 발생 예방 및 성실한 병역 이행을 유도하여 (중략) 병역 이행 문화를 확산 도모하고자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병역거부자는 해마다 500여명씩 발생하고 있다. 그들은 징역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무죄 주장의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최근 법원도 월중 행사처럼 무죄 선고로 응답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기피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는 대한민국에 없다. 병역거부여서 호의적인 판결이 가능한 것이다. 법은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또 거부자가 실명 공개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부자에 대한 실명 공개가 입법의 목적이나 취지를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무청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거부자들이 인터넷 공개에 겁을 먹고 병역을 이행하리라고 생각하는지, 단 한 건이라도 이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면 이를 공개해 공개의 실익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기피자 실명 공개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묘하게 현실과 겹친다. 그 시초는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시대, 강제 입영된 병역거부자들이 구타로 온몸이 멍으로 만신창이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충남 홍성군 읍사무소 병사계 직원이 거부자의 집 담기둥에 ‘기피자의 집’이라고 페인트칠을 한 것이 효시다. 망신을 주어서 따돌림을 당하게 했던, 미개한 원시 공동체에서나 사용한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 그 창피 주기 방식이 그 당시 통치자의 딸이 집권을 하고 있던 2015년에 입법되고, 2016년 12월 병무청 누리집 신상 공개가 시작됐다. 같은 내용에 법의 옷을 입혀서 재단장시켰는데, 이제는 페인트칠이 아니라 화면에 띄워서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5천만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아버지 시대에는 다행히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행위여서 페인트칠 한 건으로 중단되었는데, 그분의 따님 통치자는 징역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누구나 돌을 던지도록 표적을 만들어 주었다. 거부자는 대를 이은 병역거부로 징역을 살고 있고, 그 대를 이은 통치자도 결국 감옥의 한 지붕 밑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행여 징역의 아픔을 느껴 본들 결자해지는 불가능하다. 남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픈 것이 이치임을 모두가 아는 세상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병무청 누리집 화면에서 병역거부자의 실명이 사라진 세상에 살고 싶다. 예비 병역거부자를 둔 아버지이기에 조급한 마음을 떨치기가 힘이 든다.
서울 중구 신당동 5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병역거부자 116명이 병무청을 상대로 낸 병역기피자 인적사항 인터넷 공개 집행정지 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병역거부자들이 낸 본안 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없게 됐다. 지난 3월 병역거부자들은 “민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이들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찍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병역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가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전에 왜 잘못되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병무청 누리집에 나오는 공개 처분의 목적을 보면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병역기피 발생 예방 및 성실한 병역 이행을 유도하여 (중략) 병역 이행 문화를 확산 도모하고자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병역거부자는 해마다 500여명씩 발생하고 있다. 그들은 징역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무죄 주장의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최근 법원도 월중 행사처럼 무죄 선고로 응답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기피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는 대한민국에 없다. 병역거부여서 호의적인 판결이 가능한 것이다. 법은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또 거부자가 실명 공개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부자에 대한 실명 공개가 입법의 목적이나 취지를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무청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거부자들이 인터넷 공개에 겁을 먹고 병역을 이행하리라고 생각하는지, 단 한 건이라도 이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면 이를 공개해 공개의 실익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기피자 실명 공개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묘하게 현실과 겹친다. 그 시초는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시대, 강제 입영된 병역거부자들이 구타로 온몸이 멍으로 만신창이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충남 홍성군 읍사무소 병사계 직원이 거부자의 집 담기둥에 ‘기피자의 집’이라고 페인트칠을 한 것이 효시다. 망신을 주어서 따돌림을 당하게 했던, 미개한 원시 공동체에서나 사용한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 그 창피 주기 방식이 그 당시 통치자의 딸이 집권을 하고 있던 2015년에 입법되고, 2016년 12월 병무청 누리집 신상 공개가 시작됐다. 같은 내용에 법의 옷을 입혀서 재단장시켰는데, 이제는 페인트칠이 아니라 화면에 띄워서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5천만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아버지 시대에는 다행히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행위여서 페인트칠 한 건으로 중단되었는데, 그분의 따님 통치자는 징역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누구나 돌을 던지도록 표적을 만들어 주었다. 거부자는 대를 이은 병역거부로 징역을 살고 있고, 그 대를 이은 통치자도 결국 감옥의 한 지붕 밑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행여 징역의 아픔을 느껴 본들 결자해지는 불가능하다. 남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픈 것이 이치임을 모두가 아는 세상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병무청 누리집 화면에서 병역거부자의 실명이 사라진 세상에 살고 싶다. 예비 병역거부자를 둔 아버지이기에 조급한 마음을 떨치기가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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