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대선 의제를 말한다] ⑧ 4차 산업혁명 준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19대 대선 의제를 짚어보는 온라인 기획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청년·노동·교육 등 각 분야 현장 전문가들이 주요 후보 공약을 포함한 대선 의제를 비판적으로 점검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대선 후보가 내놓은 공약에 공통으로 들어간 키워드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의 용어정의와 내용은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나온 보고서의 틀에 갇혀 있다. 또, 로봇,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3D 프린터, 사물인터넷, 스마트 팩토리 등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확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러한 기술들이 국가와 기업의 미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티핑포인트’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아쉬운 점은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도 대부분의 공약들이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면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이 자동으로 가능하다는, 컨베이어 중심의 산업경제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선 공약에 혁신이란 단어는 여러 영역에 사용됐지만, 혁명이란 단어는 아마도 처음으로 쓰이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혁명(Revolution)과 혁신(Innovation)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방법, 디바이스, 시스템 들을 말하고, 혁명은 급진적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전하고 근본적인 변화(fundamental change)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주로 에너지와 통신 혹은 연결 기술 발전을 혁명의 원동력으로 정의했던 그간의 산업혁명은 사실 후세들이 정의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후세가 지금을 평가할 때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추진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더 과감한 정책과 강력한 추진력뿐만 아니라 아래의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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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로봇, 바둑을 합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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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산업혁명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을 ‘소사이어티 5.0’(Society 5.0)라고 정의했다. 수렵, 농경, 산업, 정보화 사회를 잇는 시대로 “연령, 성별, 장소, 언어 등의 한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공급받아 만족스럽고 편안한 생활을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일본을 소사이어티 5.0 플랫폼으로 만들고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부각되는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을 구성하는 관련 기술들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경제성장 전략은 노동과 고용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재택근무를 활성화해 보육과 간병을 위한 퇴직자 수를 줄이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소해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부업과 겸업 금지 규정도 원칙적 허용으로 완화해 성장산업으로 자연스럽게 인력이 유입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특히 자유로운 직장생활을 원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도 스마트 네이션 전략(Smart Nation) 전략을 통해 교통, 교육, 의료, 제조업,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자동화 도입을 통해 생산가능인구 부족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 예상 가능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인간의 기능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고 지원하기 때문에, 적절한 정책들과 효율적으로 조합하여 활용한다면 그 효용성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가 예를 들면, 출산률 증대와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아동 수당 지급,육아휴직 확대 등 전통적인 방법보다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을까?
⑵정부는 기업 혁신과 활동을 촉진시키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발달과 국가의 성장 잠재력 확중을 위해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창의적, 도전적 연구이지만 실패 확률도 높은 고위험, 혁신적 연구(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연구)를 추동하려는 고민이 빠져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대부분 고위험, 혁신적 연구의 성과물들이다. 인터넷, 지피에스(GPS), 스텔스기의 산실로 유명한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등의 챌린지를 개최하는 등 기술 개발과 확산,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을 확산시키는데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제는 하늘을 나는 트럭, 전투용 동물로봇, 모든 각도를 볼 수 있는 카메라,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용 칩 등 다양한 분야의 고위험 혁신적 기술들을 개발 중이다. 4차 산업혁명기술들에 관해 우리나라는 최고 기술수준을 보유한 미국의 70~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점점 ‘빠른 추적자’ 전략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민간기업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다. 미국의 스타트업 아메리카(Startup America), 영국의 테크시티(Tech City UK), 프랑스의 프랜치테크(La French Tech), 중국의 창신경제, 싱가포르의 스마트 네이션 등 주요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발전과 창업 활성화 전략들의 공통점은 민관이 협력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코워킹 스페이스 제공, 기술과 경험 공유를 넘어 이제는 스타트업의 직접 투자로 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비엠(IBM), 휴렛페커드(HP),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기업들 뿐만 아니라,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샤오미 레이쥔, 텐센트 마화텅 등 스타트업 출신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도전적으로 연구하고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플랫폼 기능을 수행하고, 기업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새로운 혁신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기업들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상생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겐 최근 움츠려든 대기업들의 기를 어떻게 살리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⑶ 교육혁명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는 2005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을 ‘홈랜드 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유아기부터 스마트폰을 장난감 삼아 자란 세대로 뼛속까지 모바일이 스며든 세대다. 이들은 로봇과 인공 지능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함께 살아갈 세대다. 많은 국가들이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코딩 교육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기업가정신 교육도 의무화 된다. 코딩교육은 일종의 디지털 소양으로 아이들의 창의성과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그러나 한 달에 200만 원하는 코딩 유치원뿐만 아니라, 800만 원 짜리 미국 코딩 캠프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영국에서는 청소년 시절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 15~20%는 창업을 택한다. 취업한 학생들도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취업률이 19% 포인트 높고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기업가정신은 창의적 기술개발과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한다. 당장 기업가정신 교육이 시작되면 또 어떤 사교육 시장의 반응이 나타날까?
최근에는 진로교육도 강화되고 있다. 과연 기존의 선생님들이 이러한 교육들을 모두 전담할 수 있을까? 교사들의 전문성 함양뿐만 아니라 무크(MOOC) 등 다양한 공유지식들의 활용과 전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이제는 코딩, 기업가정신, 진로교육 등 해당 분야 전문가 집단에게도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보다 생생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유망하고 자동화에 덜 민감한지, 이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부는 이제 국민 개개인이 기술발전과 시대 흐름에 민첩하게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평생교육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하고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어 기술발전에 따른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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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19대 대선에서 핫 이슈로 떠올랐다. 사진은 지난 2015년 4월 카이스트에서 열린 웨어러블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선보인 다양한 컴퓨터. 카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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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통한 기득권 타파는 필수다.
1990년대 디지털 혁명 초기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 시험무대였다. 세계에서 혁신적이라 평가되는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 활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런 말이 우리와 관련 없어졌다. 2000년대 위피 의무 탑재 규정으로 2년 이상 아이폰 국내 출시가 지연되면서, 무선인터넷 생태계 구축과 스마트폰 발전이 늦어진 경험도 있다.
우리나라 시장 매력도는 그만큼 낮아졌고, 더 이상의 전략은 무의미하며, 혁신의 토양이 부실해졌다. 예를 들어 공유경제는 글로벌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기술발전에 따른 양극화를 해소하는 완충제가 될 잠재력도 있다. 대표적 카쉐어링 기업인 우버 기업가치는 700억 달러로 포드, 지엠(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기업가치를 넘어섰고, 에어비앤비는 300억 달러로 세계 최대 호텔체인인 힐튼을 뛰어넘었다. 교통정책과 도시재생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버의 성장은 거의 전 산업분야에 ‘우버피케이션(’uberfication) 현상을 불러왔고, 수많은 스타트업들과 대기업들이 또 다른 우버가 되려 도전하고 있다.
혁신이 혁신을 낳고 혁신가를 배출하지만, 이러한 혁신의 선순환 환경을 한국에선 찾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이나 출장때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불법이고, 로컬 스타트업들 밖에는 없다. 이러한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들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하지 못하는데는 정부의 규제 탓도 있지만 기득권 단체들이 혁신에 저항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유경제 뿐 아니라,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내거티브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시 세계의 혁신적 기술들의 시험무대가 되어야 한다.
⑸ 장기적 정책 추진 기반을 마련하라.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면서 5년을 위한 정책만을 추진하면 안 된다. 5년 단위로 국정운영 철학이 바뀌면서 성장동력과 과학기술 정책은 새롭게 정의되고 포장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소중한 시간이 낭비됐고 연구는 단절됐다. 우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압축성장이다. 서양이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쳐 현재의 기술과 근대 국가시스템을 완성시켰지만 한국은 1960대 이후 시작해 단시일 내에 완성했다.
하지만 단기적 양적 성과 창출에 집착하는 관성은 정책과 기술개발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함께 교육,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등 모든 국가를 구성하는 시스템들이 유기적,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단기적 정책 추진과 성과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과학기술과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들은 5년을 넘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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