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모든 대선 주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선언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래 17년간 대표적인 악조항이었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었지만 그만큼 기다려온 반가운 변화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권리가 있는 ‘수급권자’지만 이들 모두가 수급자는 아니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 아들이나 며느리, 부모 등 가족들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가’라는 질문이다. 폐지의 방식에 따라 사회적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최근 얘기되는 몇가지 방식은 우려스럽다. 첫째, 부양의무자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권을 주되, 그 부양의무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자는 의견이 있다. ‘구상권 청구’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 현재도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지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면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족이라도 ‘수급 신청’을 위해 연락이 닿고 ‘비용 청구’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후 자식 얼굴을 10년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생활비를 청구하기 위해 자식을 찾아내는 것에 동의하겠는가? 집을 나와 수십년간 부모를 보지 못한 사람이 노인이 된 부모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겠는가? 구상권 청구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가장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할 것이다.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아니다. 둘째, 장애인이나 노인 가구를 우선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이전의 생활보호법과 달리 인구학적 기준(연령, 장애유무 등)을 폐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생활보호법과 유비할 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장 진일보한 부분으로 꼽히는 조항이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을 도입한다면 우리가 성취한 진일보를 역행하는 것이다. 또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면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 어떤 인구의 욕구가 더 우선하는지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누가 더 먼저 도움받을 만한 빈민인지’를 가리는 것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잔여적 성격과 낙인을 강화할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방식으로 급여별 폐지를 제안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5년 기초법 개정으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급여로 각각 그 기준이 달라졌다. 그중 교육 급여는 가장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다른 급여들도 순차적으로 폐지하면 된다. 국토교통부가 급여 심사 등을 이미 따로 진행하고 있는 주거 급여를 우선 폐지하고 의료 급여, 생계 급여 순으로 폐지해 나간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며 완전 폐지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가 2~3년 안에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과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한국적 사회복지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제대로 복지가 발달한 적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연금은 부실하고, 사적 부양을 기대하기에 사회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생존과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가난 때문에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회다. 대선 후보들은 선언을 넘어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지’ 밝혀야 한다. 우리는 조건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필요하다.
왜냐면 |
[왜냐면]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가? / 김윤영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모든 대선 주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선언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래 17년간 대표적인 악조항이었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었지만 그만큼 기다려온 반가운 변화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권리가 있는 ‘수급권자’지만 이들 모두가 수급자는 아니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 아들이나 며느리, 부모 등 가족들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가’라는 질문이다. 폐지의 방식에 따라 사회적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최근 얘기되는 몇가지 방식은 우려스럽다. 첫째, 부양의무자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권을 주되, 그 부양의무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자는 의견이 있다. ‘구상권 청구’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 현재도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지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면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족이라도 ‘수급 신청’을 위해 연락이 닿고 ‘비용 청구’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후 자식 얼굴을 10년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생활비를 청구하기 위해 자식을 찾아내는 것에 동의하겠는가? 집을 나와 수십년간 부모를 보지 못한 사람이 노인이 된 부모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겠는가? 구상권 청구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가장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할 것이다.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아니다. 둘째, 장애인이나 노인 가구를 우선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이전의 생활보호법과 달리 인구학적 기준(연령, 장애유무 등)을 폐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생활보호법과 유비할 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장 진일보한 부분으로 꼽히는 조항이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을 도입한다면 우리가 성취한 진일보를 역행하는 것이다. 또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면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 어떤 인구의 욕구가 더 우선하는지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누가 더 먼저 도움받을 만한 빈민인지’를 가리는 것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잔여적 성격과 낙인을 강화할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방식으로 급여별 폐지를 제안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5년 기초법 개정으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급여로 각각 그 기준이 달라졌다. 그중 교육 급여는 가장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다른 급여들도 순차적으로 폐지하면 된다. 국토교통부가 급여 심사 등을 이미 따로 진행하고 있는 주거 급여를 우선 폐지하고 의료 급여, 생계 급여 순으로 폐지해 나간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며 완전 폐지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가 2~3년 안에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과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한국적 사회복지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제대로 복지가 발달한 적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연금은 부실하고, 사적 부양을 기대하기에 사회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생존과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가난 때문에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회다. 대선 후보들은 선언을 넘어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지’ 밝혀야 한다. 우리는 조건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필요하다.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모든 대선 주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선언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래 17년간 대표적인 악조항이었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었지만 그만큼 기다려온 반가운 변화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권리가 있는 ‘수급권자’지만 이들 모두가 수급자는 아니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 아들이나 며느리, 부모 등 가족들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가’라는 질문이다. 폐지의 방식에 따라 사회적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최근 얘기되는 몇가지 방식은 우려스럽다. 첫째, 부양의무자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권을 주되, 그 부양의무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자는 의견이 있다. ‘구상권 청구’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 현재도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지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면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족이라도 ‘수급 신청’을 위해 연락이 닿고 ‘비용 청구’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후 자식 얼굴을 10년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생활비를 청구하기 위해 자식을 찾아내는 것에 동의하겠는가? 집을 나와 수십년간 부모를 보지 못한 사람이 노인이 된 부모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겠는가? 구상권 청구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가장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할 것이다.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아니다. 둘째, 장애인이나 노인 가구를 우선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이전의 생활보호법과 달리 인구학적 기준(연령, 장애유무 등)을 폐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생활보호법과 유비할 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장 진일보한 부분으로 꼽히는 조항이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을 도입한다면 우리가 성취한 진일보를 역행하는 것이다. 또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면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 어떤 인구의 욕구가 더 우선하는지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누가 더 먼저 도움받을 만한 빈민인지’를 가리는 것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잔여적 성격과 낙인을 강화할 것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방식으로 급여별 폐지를 제안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5년 기초법 개정으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급여로 각각 그 기준이 달라졌다. 그중 교육 급여는 가장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다른 급여들도 순차적으로 폐지하면 된다. 국토교통부가 급여 심사 등을 이미 따로 진행하고 있는 주거 급여를 우선 폐지하고 의료 급여, 생계 급여 순으로 폐지해 나간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며 완전 폐지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가 2~3년 안에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과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한국적 사회복지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제대로 복지가 발달한 적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연금은 부실하고, 사적 부양을 기대하기에 사회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생존과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가난 때문에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회다. 대선 후보들은 선언을 넘어 ‘어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인지’ 밝혀야 한다. 우리는 조건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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