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활동가 하나, 둘…. 출근길에 만나는 노란리본을 세곤 했다. 참사 발생 한 달도 되지 않아 검열의 대상이 되어버린 노란리본이었다. ‘노란리본을 떼라’는 명시적·묵시적 금지령이 곳곳에 퍼졌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리본을 떼는 게 좋다는 친구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어야 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을 향한 모욕과 혐오는 세월호가 침몰한 그해 4월이 채 끝나기 전부터 쏟아졌다. 참사 나흘째,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가족 행세 선동꾼’이 있다고 글을 쓰고, 좌파단체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시체장사’라는 끔찍한 말이 떠돌았다. 목숨을 건 유가족의 단식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304명의 생명을 삼킨 세월호와 함께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침몰해버린 것 같았다. ‘지겹다’는 비수를 맞으며 이어온 피해 가족들의 싸움이 세 번째 겨울을 맞던 2016년, 천만촛불이 광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모욕과 혐오, 검열로 억눌렸던 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광장의 목소리가 ‘세월호’를 외쳤다. 마침내 박근혜가 탄핵되었고, 세월호가 검은 바다를 뚫고 1073일 만에 떠올랐다. 세월호 인양은 참사 1년 만에 간신히 결정되었다. 그 후 수차례 시행착오로 인양은 여섯 번이나 연기되었고 훼손과 절단을 거듭하며 인양 방식도 바뀌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방해를 지시하고, 유가족 고발을 사주했던 해양수산부는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세월호를 인양했다. 세월호 인양은 세월호 선체만을 인양하는 것이 아니다. 9명의 미수습자와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 마지막 유품이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잠겨 있었다. 하여 세월호 인양과 수습의 전 과정은 유해가 최대한 온전히 수습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2015년 9월이 돼서야 미수습자 유실방지망을 설치했고, 그것마저 부실하게 설치했음이 인양된 세월호에서 확인됐다. 선체에서 흘러나오는 진흙에서 희생자의 유품이 발견되고 있으나 현장 작업자들은 진흙을 밟고 다니고 있다. 그 진흙 속에 미수습자와 희생자의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뭍으로 돌아온 세월호와 함께 4월16일, 3주기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3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4년 4월16일, 침몰해버린 인간의 존엄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책임자는 아직 처벌되지 않았고, 안타까운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책임자를 처벌한 첫 번째 역사를 써야 한다. 그리하여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 인간의 존엄이 보장받는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3년을 맞아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기억과 다짐의 4월’을 제안한다(세월호참사 3년 특별페이지: 416act.net/sewol3). 천만촛불과 노란리본의 물결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노란리본을 달고 광장에서, 그리고 안산에서 함께 기억할 것이다. 9명의 미수습자 수습, 세월호 선체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세 번째 맞는 4월16일 그 봄을 기억하고, 따뜻한 봄으로 열어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란리본을 가방에 다는 일, 리본 배지를 옷깃에 꽂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3년, 노란리본을 달았던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용기있는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탈출하고만 싶던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도무지 보이지 않던 희망이 아주 작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올라온 세월호처럼.
왜냐면 |
[왜냐면] 세월호와 함께 돌아오는 3주기 / 강호연 |
강호연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활동가 하나, 둘…. 출근길에 만나는 노란리본을 세곤 했다. 참사 발생 한 달도 되지 않아 검열의 대상이 되어버린 노란리본이었다. ‘노란리본을 떼라’는 명시적·묵시적 금지령이 곳곳에 퍼졌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리본을 떼는 게 좋다는 친구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어야 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을 향한 모욕과 혐오는 세월호가 침몰한 그해 4월이 채 끝나기 전부터 쏟아졌다. 참사 나흘째,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가족 행세 선동꾼’이 있다고 글을 쓰고, 좌파단체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시체장사’라는 끔찍한 말이 떠돌았다. 목숨을 건 유가족의 단식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304명의 생명을 삼킨 세월호와 함께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침몰해버린 것 같았다. ‘지겹다’는 비수를 맞으며 이어온 피해 가족들의 싸움이 세 번째 겨울을 맞던 2016년, 천만촛불이 광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모욕과 혐오, 검열로 억눌렸던 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광장의 목소리가 ‘세월호’를 외쳤다. 마침내 박근혜가 탄핵되었고, 세월호가 검은 바다를 뚫고 1073일 만에 떠올랐다. 세월호 인양은 참사 1년 만에 간신히 결정되었다. 그 후 수차례 시행착오로 인양은 여섯 번이나 연기되었고 훼손과 절단을 거듭하며 인양 방식도 바뀌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방해를 지시하고, 유가족 고발을 사주했던 해양수산부는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세월호를 인양했다. 세월호 인양은 세월호 선체만을 인양하는 것이 아니다. 9명의 미수습자와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 마지막 유품이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잠겨 있었다. 하여 세월호 인양과 수습의 전 과정은 유해가 최대한 온전히 수습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2015년 9월이 돼서야 미수습자 유실방지망을 설치했고, 그것마저 부실하게 설치했음이 인양된 세월호에서 확인됐다. 선체에서 흘러나오는 진흙에서 희생자의 유품이 발견되고 있으나 현장 작업자들은 진흙을 밟고 다니고 있다. 그 진흙 속에 미수습자와 희생자의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뭍으로 돌아온 세월호와 함께 4월16일, 3주기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3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4년 4월16일, 침몰해버린 인간의 존엄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책임자는 아직 처벌되지 않았고, 안타까운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책임자를 처벌한 첫 번째 역사를 써야 한다. 그리하여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 인간의 존엄이 보장받는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3년을 맞아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기억과 다짐의 4월’을 제안한다(세월호참사 3년 특별페이지: 416act.net/sewol3). 천만촛불과 노란리본의 물결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노란리본을 달고 광장에서, 그리고 안산에서 함께 기억할 것이다. 9명의 미수습자 수습, 세월호 선체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세 번째 맞는 4월16일 그 봄을 기억하고, 따뜻한 봄으로 열어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란리본을 가방에 다는 일, 리본 배지를 옷깃에 꽂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3년, 노란리본을 달았던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용기있는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탈출하고만 싶던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도무지 보이지 않던 희망이 아주 작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올라온 세월호처럼.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활동가 하나, 둘…. 출근길에 만나는 노란리본을 세곤 했다. 참사 발생 한 달도 되지 않아 검열의 대상이 되어버린 노란리본이었다. ‘노란리본을 떼라’는 명시적·묵시적 금지령이 곳곳에 퍼졌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리본을 떼는 게 좋다는 친구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어야 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을 향한 모욕과 혐오는 세월호가 침몰한 그해 4월이 채 끝나기 전부터 쏟아졌다. 참사 나흘째,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가족 행세 선동꾼’이 있다고 글을 쓰고, 좌파단체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시체장사’라는 끔찍한 말이 떠돌았다. 목숨을 건 유가족의 단식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304명의 생명을 삼킨 세월호와 함께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침몰해버린 것 같았다. ‘지겹다’는 비수를 맞으며 이어온 피해 가족들의 싸움이 세 번째 겨울을 맞던 2016년, 천만촛불이 광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모욕과 혐오, 검열로 억눌렸던 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광장의 목소리가 ‘세월호’를 외쳤다. 마침내 박근혜가 탄핵되었고, 세월호가 검은 바다를 뚫고 1073일 만에 떠올랐다. 세월호 인양은 참사 1년 만에 간신히 결정되었다. 그 후 수차례 시행착오로 인양은 여섯 번이나 연기되었고 훼손과 절단을 거듭하며 인양 방식도 바뀌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방해를 지시하고, 유가족 고발을 사주했던 해양수산부는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세월호를 인양했다. 세월호 인양은 세월호 선체만을 인양하는 것이 아니다. 9명의 미수습자와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 마지막 유품이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잠겨 있었다. 하여 세월호 인양과 수습의 전 과정은 유해가 최대한 온전히 수습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2015년 9월이 돼서야 미수습자 유실방지망을 설치했고, 그것마저 부실하게 설치했음이 인양된 세월호에서 확인됐다. 선체에서 흘러나오는 진흙에서 희생자의 유품이 발견되고 있으나 현장 작업자들은 진흙을 밟고 다니고 있다. 그 진흙 속에 미수습자와 희생자의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뭍으로 돌아온 세월호와 함께 4월16일, 3주기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3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4년 4월16일, 침몰해버린 인간의 존엄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책임자는 아직 처벌되지 않았고, 안타까운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책임자를 처벌한 첫 번째 역사를 써야 한다. 그리하여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 인간의 존엄이 보장받는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3년을 맞아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기억과 다짐의 4월’을 제안한다(세월호참사 3년 특별페이지: 416act.net/sewol3). 천만촛불과 노란리본의 물결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노란리본을 달고 광장에서, 그리고 안산에서 함께 기억할 것이다. 9명의 미수습자 수습, 세월호 선체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세 번째 맞는 4월16일 그 봄을 기억하고, 따뜻한 봄으로 열어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란리본을 가방에 다는 일, 리본 배지를 옷깃에 꽂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3년, 노란리본을 달았던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용기있는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노란리본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탈출하고만 싶던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도무지 보이지 않던 희망이 아주 작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올라온 세월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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