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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03 18:20 수정 : 2017.04.03 18:58

박예신
서울 관악구 호암로

거대한 상처투성이인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허망하게 흘러간 치욕의 시간들을 세월호는 날것 그대로 보여 주었다. 먼발치에서 유가족들은 애간장이 다 녹도록 울었다. 통한과 안도가 교차하는 눈물이었다.

촛불 광장의 눈물이 진정한 시민성의 징표가 되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유가족의 상처가 회복되려면, 그리고 대한민국이 회복되려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회복은 끝없이 유예되어야 한다. 권위를 궐위시킨 준시민(semi-citizen)의 극적인 승리감이 기쁜 회복의 신호탄이어선 안 된다.

3년간 멈춰 있던 유가족들의 시계는 이제 막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과 ‘시민’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한국인들이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려면 함성 소리에 묻힌 이들 각각의 상흔까지도 입체적으로 내재화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단원 이후에도 끊임없이 던져야 할 물음을 위한 시민적 지층을 마련하는 일이다.

한국인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주의의 훼손을 ‘집단적으로 아파하며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 것’은 이들에게도 시민성이 움틀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런 집단성은 일찍이 한국인들이, 이 땅을 휩쓴 침략과 치욕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 단위로 공유한 방어 기제가 두터웠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 과도기에도 그 방어 기제가 얼마간 유효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방어 이후가 부실했던 탓에 한국인의 집단성은 도리어 시민성을 반증하고 말았다. 소위 냄비 근성이라는 오명이 붙은 그 기질은 구성원 각각의 상흔까지 고려하는 개념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단 층위에서만 트라우마가 해결되고 나면 나머지는 순전히 개별 당사자의 몫이었다. 필자도 이해는 한다. 집단 전체에게 괴로움의 열병이 전염되는 것보다 복지 차원에서 몇몇만 괴로운 것이 차라리 효율적인 선택일 테니까.

그러나 그 선택은 개발독재 시대에나 유효한 이익 논리다. 괴로움은 빨리 망각해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은 이념이 곳곳에 부려 놓은 소문과 결합되어 유가족을 누르는 또 다른 권위와 억압으로 변형되었다. 그중 하나는 더딘 게 당연한 유가족의 상처 회복을 두고 ‘세월호 코스프레’라는 누명을 씌운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그런 행위 양식으로부터 확인된 명제는 하나, ‘한국인들은 여태껏 국민에서 시민으로의 변곡점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시민성을 향한 한국인의 대내외적 열망은 텅 빈 수사법에 그치는 셈이다. 유례없는 민주적 신기원을 얼마 전 이룩하고도 후속 단계가 과거로부터 진일보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게 없다.

전후 이촌향도를 거친 한국인들은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시민성의 징표인 사회적 책임을 공유할 뒷심이 부족했다. 다행히 현대사의 숱한 항쟁과 시위가 누적되며 한국인에게도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역량은 생겨났지만 그건 반쪽짜리 시민성에 불과하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촛불 집회를 단지 천육백만이라는 숫자로만 기억한다면, ‘세월호’라는 비극을 마음속으로 상연하며 계속 힘껏 정확히 아파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 한국은 ‘형식적 민주주의, 내용적 권위주의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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