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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7 18:30 수정 : 2017.03.27 18:52

황병래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위원장

2014년 4월16일, 모든 국민이 발을 동동 굴리며 보는 앞에서 조금씩 침몰했던 세월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1073일 만이다. 아직도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서서히 앗아졌을 295명의 모습을 떠올리면 몸과 마음이 아득해지곤 한다. 긴긴 시간 동안 수습되지 못한 9명의 목숨들은 어두운 바다 어디에 남아 있을까. 유가족들은 물론, 국민들이 애타게 바랐던 인양이, 이렇듯 신속하게 바다 위로 떠올릴 수 있는 세월호가 왜 이렇듯 1073일 동안이나 방치됐어야 했는가. 특별법이 제정되고 원인 규명을 위한 숱한 몸부림과 울부짖음이 있었지만 정권은 온갖 구실로 지연시키고 사실을 왜곡했다. 그 가운데서 유족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국민들은 집단 우울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관련 공무원들은 오히려 승진이 뒤따랐다. 정권의 의중을 읽고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대가였다.

2015년 1월28일,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대폭 인하하고 경제능력이 있는 피부양자의 무임승차를 막으며 월급외 일정 소득 이상이 있는 직장가입자에게 그 소득만큼 건보료를 부과하려던 건보료체계개선기획단의 최종안 발표가 실종되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서 삼성물산 인수합병 성공을 위해 압력을 가한 혐의로 현재 구속 중인 당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부과체계개선안 발표의 백지화를 선언한 것이다. 부과체계개선을 국정과제로 삼고 2013년 7월 기획단을 출범시켜 각계 대표와 전문가들이 18개월 이상 건강보험공단과 국세청의 모든 자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숱한 시뮬레이션 결과물에 대한 논의 끝에 내놓은 기획단의 최종안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물론, 최종안의 내용은 복지부와 충분히 협의를 마친 것이었다. 그 이후 복지부 담당 공무원들이 한 일은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며 부과체계 개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건보공단의 목소리를 가차없이 찍어 누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727일 후인 지난 1월23일 복지부는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2015년 1월 기획단이 발표하려던 최종안을 3단계로 나눈 단계적 시행안이었다. 이 정도의 결과 값은 이미 충분히 도출되고도 남았을 내용이었다. 부과체계 개선을 온몸으로 막았던 복지부 관료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세월호 인양이나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의 신속성은 너무나 닮았다. 오랜 세월을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한 맺힘으로 보내야 했던 유족들과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는커녕 은폐와 매도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 박기를 서슴지 않았던 정권. 매월 부담 능력의 몇 배나 되는 보험료에 허덕이며 한숨지어야 했던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수백만 저소득 지역가입세대에 또다시 절망감과 배신감을 심어주었던 정부. 이 땅에서 약자는, 없는 자는 이렇게 유린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 유린의 역할을 담당하고 승진을 챙긴 공무원들은 가려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 아닌 정권의 입맛에 충실한 정치 공무원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와 피해자가 또다시 같은 이유로 유린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에 바른말 하다 옷 벗은 공무원, 교묘하게 위장된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정권의 지시를 침묵으로 거부하다 좌천된 관료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옥석 구분과 과정의 규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차기 정권이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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