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필자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대마도를 200차례 가까이 다녀왔다. 한국과 일본의 길목인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와 선현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통해 1986년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시작으로 백제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 신라국사 박제상 등 대마도를 거쳐 간 선현들을 기리는 현창비 10기를 세웠다. 어느 날 숨 막히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2년 국내 절도단이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관세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일본에 돌아갔어야 할 이 불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의 원 소유권 주장 소송으로 대전 문화재청에 보관되고 있다. 부석사는 관세음보살좌상이 14세기 후반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음을 주장하며 2013년 2월 불상 반환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2016년 4월에는 정부를 상대로 불상 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전지법은 고려사와 관음사 연혁, 복장물(불상 내 경전, 사리 등 장엄물), 불에 그을린 흔적 등을 토대로 불상을 부석사의 소유라고 판단해 2017년 1월26일에 부석사 인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곧바로 검찰의 인도 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불상은 확정 판결 전까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서 잠들어 있게 됐다. 이 불상의 반환을 둘러싼 토론이 이번 달에 대전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논점은 간명하다. 과연 일본이 약탈해 간 증거가 있느냐이다. 대마도에는 현재 백수십 구의 한국 불상이 있다. 이 중에는 왜구가 약탈한 것도 있겠지만 정상적 과정을 거쳐 와 있는 것도 상당수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마도에서 관련 사실을 조사해 봤지만 약탈의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불상이 설사 약탈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또 다른 약탈이라는 방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법원이 추정만으로 도둑이 훔친 불상을 일본에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한 판결은 그동안의 문화재 환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대마도 측과 협의해 몇 점에 대한 반환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판결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만 7만1000여점으로,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16만8000여점의 42.5%다. 불상 1점의 국제법적 처리를 이행하지 않는 데 약점이 잡혀 7만점이 넘는 우리 문화재 환수 논의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 것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은 또 다른 약탈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관음보살좌상은 우선 대마도 관음사에 돌려준 후 적법한 절차와 문화적·외교적 논의를 통해 현명한 환수 방안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면 |
[왜냐면] 대마도 불상의 제자리 / 정영호 |
정영호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필자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대마도를 200차례 가까이 다녀왔다. 한국과 일본의 길목인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와 선현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통해 1986년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시작으로 백제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 신라국사 박제상 등 대마도를 거쳐 간 선현들을 기리는 현창비 10기를 세웠다. 어느 날 숨 막히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2년 국내 절도단이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관세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일본에 돌아갔어야 할 이 불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의 원 소유권 주장 소송으로 대전 문화재청에 보관되고 있다. 부석사는 관세음보살좌상이 14세기 후반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음을 주장하며 2013년 2월 불상 반환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2016년 4월에는 정부를 상대로 불상 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전지법은 고려사와 관음사 연혁, 복장물(불상 내 경전, 사리 등 장엄물), 불에 그을린 흔적 등을 토대로 불상을 부석사의 소유라고 판단해 2017년 1월26일에 부석사 인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곧바로 검찰의 인도 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불상은 확정 판결 전까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서 잠들어 있게 됐다. 이 불상의 반환을 둘러싼 토론이 이번 달에 대전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논점은 간명하다. 과연 일본이 약탈해 간 증거가 있느냐이다. 대마도에는 현재 백수십 구의 한국 불상이 있다. 이 중에는 왜구가 약탈한 것도 있겠지만 정상적 과정을 거쳐 와 있는 것도 상당수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마도에서 관련 사실을 조사해 봤지만 약탈의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불상이 설사 약탈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또 다른 약탈이라는 방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법원이 추정만으로 도둑이 훔친 불상을 일본에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한 판결은 그동안의 문화재 환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대마도 측과 협의해 몇 점에 대한 반환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판결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만 7만1000여점으로,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16만8000여점의 42.5%다. 불상 1점의 국제법적 처리를 이행하지 않는 데 약점이 잡혀 7만점이 넘는 우리 문화재 환수 논의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 것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은 또 다른 약탈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관음보살좌상은 우선 대마도 관음사에 돌려준 후 적법한 절차와 문화적·외교적 논의를 통해 현명한 환수 방안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필자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대마도를 200차례 가까이 다녀왔다. 한국과 일본의 길목인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와 선현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통해 1986년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시작으로 백제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 신라국사 박제상 등 대마도를 거쳐 간 선현들을 기리는 현창비 10기를 세웠다. 어느 날 숨 막히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2년 국내 절도단이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관세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일본에 돌아갔어야 할 이 불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의 원 소유권 주장 소송으로 대전 문화재청에 보관되고 있다. 부석사는 관세음보살좌상이 14세기 후반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음을 주장하며 2013년 2월 불상 반환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2016년 4월에는 정부를 상대로 불상 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전지법은 고려사와 관음사 연혁, 복장물(불상 내 경전, 사리 등 장엄물), 불에 그을린 흔적 등을 토대로 불상을 부석사의 소유라고 판단해 2017년 1월26일에 부석사 인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곧바로 검찰의 인도 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불상은 확정 판결 전까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서 잠들어 있게 됐다. 이 불상의 반환을 둘러싼 토론이 이번 달에 대전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논점은 간명하다. 과연 일본이 약탈해 간 증거가 있느냐이다. 대마도에는 현재 백수십 구의 한국 불상이 있다. 이 중에는 왜구가 약탈한 것도 있겠지만 정상적 과정을 거쳐 와 있는 것도 상당수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마도에서 관련 사실을 조사해 봤지만 약탈의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불상이 설사 약탈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또 다른 약탈이라는 방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법원이 추정만으로 도둑이 훔친 불상을 일본에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한 판결은 그동안의 문화재 환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대마도 측과 협의해 몇 점에 대한 반환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판결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만 7만1000여점으로,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16만8000여점의 42.5%다. 불상 1점의 국제법적 처리를 이행하지 않는 데 약점이 잡혀 7만점이 넘는 우리 문화재 환수 논의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 것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은 또 다른 약탈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관음보살좌상은 우선 대마도 관음사에 돌려준 후 적법한 절차와 문화적·외교적 논의를 통해 현명한 환수 방안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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