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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3 18:34 수정 : 2017.03.13 19:00

권태면
전 외교부 대사

사드 배치 등 외교안보 문제를 놓고 내용보다는 감정싸움이 계속되는 모습을 본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대화라 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오늘의 상황에 거울로 비치어 참고가 될 때 우리는 무릎을 치며 그 시대를 뒤돌아보게 된다. 작금의 안보논란 속에서 다시 되새겨볼 수 있는 가장 비슷한 과거사는 정묘, 병자호란의 시기일 것이다.

신흥강국인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줄타기 같은 균형외교를 해나간 광해, 그에게 강홍립 파병은 얼마 전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과 같은 고민 끝 결단이었을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뀐 뒤 1627년 정묘호란을 겪고도 1636년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할 때까지 ‘잃어버린 9년’간 실천 없는 말싸움만 계속된 안보무능은 최근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정권유지와 강화도로 도망가는 데에만 관심을 둔 우유부단한 인조도 주전·주화파 가리지 않고 모든 관리들과 매일같이 논쟁했다는 것을 역사기록은 말해준다. 이에 비해 면밀한 토론과 깊은 고민도 없이 사드 배치를 덜컥 결정해 놓고 뒷감당은 미뤄버린 일부 보수의 행태는 인조만도 못하다.

지난 수백년간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대외관계의 기본은 균형외교일 것이다. 남들의 균형을 우리가 잡아보겠다는 것(balancer)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나의 균형을 잡아 나가겠다는 것(balanced)이어야 한다. 설사 이제는 새우가 아닌 돌고래쯤 되었다 쳐도 어떤 큰 고래와도 충돌하지 않고 영민하게 헤엄쳐야 한다. 숙명과도 같은 지정학적 위치상 대국이 아닌 우리에게 대외관계의 철칙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친근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와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척지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외교에서는 민감한 문제일수록 밖으로 말하는 것(stated policy)과 속생각(intended policy)을 따로 가지는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속생각을 밝혀라, 어느 쪽에 붙을 것이냐, 큰 고래와 부딪쳐도 좋다는 둥 목소리만 높은 무모한 주장들이 들린다. 또 당선되는 대통령이 어느 나라에 먼저 가느냐를 놓고 따지고, 북한에는 먼저 가면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무엇을 어떻게 잘 논의하느냐가 문제이지, 나라마다 복잡한 일정과 사정이 있는데 먼저 가고 뒤에 가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주체성 없는 현상인데 고질적인 사대주의와 서열의식의 반영인 듯하여 씁쓸하다. 제대로 헤엄치는 돌고래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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