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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06 18:33 수정 : 2017.03.06 19:10

최성진
목사, 순천하늘씨앗교회

삼일절 98주년을 맞아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가 주최한 기도회에서 난무한 극우적 발언을 접하며 그들의 몰락을 예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 몰락의 모양새가 영 아름답지가 않다. 하기는 자멸하는 마당에 모양을 논하는 일 자체가 한가한 소리일 수도 있다. 당장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저들의 입장에서는 염치고 체면이고 따질 여유가 없을 것이다.

기도회 말미에 등장한 (전국 목사 500명으로 구성됐다는) ‘구국결사대’의 주장이 압권이었다. “태극기를 싫어하고 대통령을 모함하는 자들, 정권을 찬탈하고 공산화하기 위해 발악하는 자들을 모조리 심판해야 한다”는 그들의 증오 어린 외침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이승만 정권을 적극 지지하던 기독교인들의 모습이었다.

해방 정국에서 독립운동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한 백색테러의 선봉에 선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았다. 영락교회를 근거지 삼아 활동했던 서북청년단은 가장 악랄했던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광기를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주장들은 그들이 신봉한다는 예수의 사랑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궁금했다.

평소 다양성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토록 다른 생각과 지향점을 가진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아래 한 묶음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의 신앙과 저들이 믿고 지향하는 바의 차이는 멀고 아득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정의나 예수의 사랑 등 기독교의 소중한 가르침들은 저들의 증오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독일의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미국의 파시즘을 지지하는 우파 기독교를 ‘그리스도파시즘’이라고 비판했는데 지금 한국의 보수우파 기독교 역시 그와 똑같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예수는 근본주의 유대교와 로마 체제에 맞서다 죽임을 당한 분이다. 개신교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에 저항하며 시작됐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불의한 정권에 맞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독교의 숙명이다. 그런데 비선실세들의 전횡으로 국정이 농단되고 나라의 기틀이 흔들거리는 마당에 저들의 증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성서에서 죄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타(chata)나 헬라어 하마르타노(hamartano)의 기본적인 의미는 ‘표적(과녁)을 벗어나다’이다.

저들의 공허한 외침은 표적을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잘못된 표적을 향하고 있어 허망하고 스산하다. 3월1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초반부터 이런 불상사가 생겨 기독교인으로서 송구할 따름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런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무리들이 기독교인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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