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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0 18:30 수정 : 2017.02.20 19:02

이종태
광양시 농사꾼

김수영은 ‘통증’의 시인이다. 격변하는 민족의 수난사를 가장 여린 몸과 마음으로 직시하고 감내하면서 숙명처럼 달고 산 ‘가난의 통증’, ‘윤리의 통증’, ‘선각자의 통증’, ‘산고의 통증’을 조갯살 속에서 아픔을 먹고 자란 진주처럼, 뒤틀린 세상을 보는 가슴앓이를 산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처럼, 객혈로 토해낸 통증의 시인이다. 나는 ‘민중’이라는 주제의 열쇳말을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며 육필로 그의 시비에 새겨진 ‘풀’에서 찾고자 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사람들은 “‘풀’은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상황을 견디어내고 오히려 압도한다”거나 “‘풀’을 능동적인 ‘일어남’의 속성으로 이해하면서, 전근대적인 전통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모습과 더불어 중심에서 소외된 주변의 대상들과의 공존을 모색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김수영은 어떠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곳에 뿌리박고 살 수밖에 없는 풀의 모습에서 그가 가장 사랑한 민중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민중은 권력자에게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온몸으로 맞서 싸워왔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 어떤 계산도, 예측도, 죽음의 두려움도 잊고 그저 싸우며 이 땅을 지켜왔다. 오직 몸속에 담고 있는 질긴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이 땅에서 무엇보다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면서, 잡초라고 매도되면서도 ‘실존’ 외에는 모르는 ‘풀’과 ‘민중’이라는 두 생명체 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란을 맞아 임금과 대신들이 앞다투어 파천을 할 때에도 민중들은 이 땅을 지켜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서로 의지하며 차별 없는 세상에서 착하고 정직하게 농사지으며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들이다. 이 땅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밖에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턱없이 많이 가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차별 없이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침략전쟁으로 수많은 역경을 경험한 선조들은 소설 속에서나마 통쾌한 복수를 경험해보고자 <임진록> <유충렬전> 등 여러 유형의 영웅군담소설을 지어내고 즐겨 읽었다. 그러나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온몸으로 이 땅을 지켜낸 민중들이 아니라 신이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영웅들이었다. 민중들은 언제나 스스로 주인 되기를 포기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살아왔다. “그 나라의 정치 지도자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과 같다”는 말을 애써 외면하며 우리들의 지도자들에게 존경을 보내고 그들의 능력에 기대를 걸어왔다. 얼마 후면 우리는 대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또 한 사람의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으로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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