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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3 18:27 수정 : 2017.02.13 22:06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정신보건전문요원협회 정책위원장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향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을 개정하여 입원 절차상의 인권 침해 소지를 완화하고 그동안 공백 상태에 있던 정신질환자들의 복지서비스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모양이다. 반발의 이유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요건이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즉, 입원을 요하는 정신질환의 존재와 자타해 위험 중 하나의 요건만을 규정했던 이전 법과 달리 개정법은 두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되도록 했으며 정신과 전문의 1인의 판단을 2인의 합치된 판단으로 강화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강제입원 절차 자체에 대한 통제 강화와 함께 입원적정성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입원 뒤에도 불법적 혹은 부당한 강제입원을 감독하는 절차를 두었다는 것도 불만을 제기한다.

과연 개정법의 강제입원 절차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엄격한 것일까?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국가와 비교한다면 강제입원 절차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강제입원은 법원의 판결에 의하거나 행정부의 행정심판을 통하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정법조차도 해당 병원의 전문의 1인과 공공기관의 전문의 1인에게 강제입원 판단을 맡기는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의사 개인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사법심사제를 도입하여 강제입원 절차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강제입원의 요건과 관련해서는 국제적으로 ‘자타해의 위험’이라는 데에 일치한다. 그럼에도 현행법이 자타해의 위험이 없는 경우에도 강제입원이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그 개정은 만시지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정신보건법을 근거로 정신의료기관에 자의에 반하여 입원하도록 한다면 정신질환의 존재는 입원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니 이와 더불어 자타해 위험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단지 자타해의 위험만 존재하는 경우에도 정신의료기관에 강제입원을 시켜야 한다면 정신의료기관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해서도 국제 법정신의학계는 강제입원의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입원 당시 입원 결정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결정 능력에 현저한 결손이 있다는 것이 요건으로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입원적정성심사위원회 운영의 현실성에 관해서도 의료계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나라 정신보건제도는 강제입원을 당해도 누가 어디에 입원해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부당한 입원의 경우에도 몇 년씩 입원 후에 퇴원하게 되거나 동료 퇴원 환자를 통한 외부 연락으로 극적으로 벗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이 제도는 강제입원에 관한 사법심사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강제입원을 당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공공영역이 관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신의료기관에서의 인권 침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의 50%가 퇴원해야 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걱정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판단하던 것을 두 사람이 판단하게 되는 것만으로 3만~4만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퇴원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간 정신과 전문의의 입원 진단이 부적절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계는 사회적 혼란을 걱정하기보다 입원 중심 정신의료를 어떻게 사람 중심 혹은 지역사회 중심 정신의료로 연착륙시킬 것인가 걱정하는 것이 좋겠다. 국제적으로도 작금의 우리나라 정신보건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2009년 캐나다 법원은 정신질환을 가진 한국인 난민신청자에 대하여 귀국 후 우리나라 정신보건법 체계에 의한 치료가 학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최근 오이시디 정책분석가인 정신과 의사는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는 입원치료로 독점되어 있는데 이는 정신과 병상이 감소하는 다른 오이시디 국가와 반대 경향을 나타낸다고 우려하였다.

우리 헌법은 그 사람이 누구라고 하더라도 적정한 절차 없이 인신구속을 할 수 없도록 엄격한 인권적 절차를 요구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하여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인간 존엄에 대한 헌법정신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국제적 합의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비추어볼 때도 이번 개정법은 미흡하나마 국제적 인권규범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 개정법을 통하여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에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하는 개혁을 단정하였던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입원기간이 짧고 강제입원이 최소화된 정신보건 모범국가로 거듭났다. 이 개혁은 민주정신의학을 주창하였던 정신과 의사 바살리아에 의해 주도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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