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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6 18:37 수정 : 2017.02.06 19:41

정재룡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는 예산심사에서 헌법 제57조에 따라 감액만 가능하고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예산안의 총액이나 각항의 금액을 증가할 수 없고, 감액한 예산을 가지고 조정할 수도 없다. 국회에서 실제 예산조정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그것은 정부가 허락한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여야 의원 모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이라도 정부가 반대하면 무산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감액에 그치는 것은 헌법 제57조를 문리적으로만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1948년 제헌 당시 헌법안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의 헌법해의와 헌법제정회의록을 보면 예산제도의 취지는 국회의 권한이 삭감으로 제한되는 반면, 정부도 지출에 있어서 국회의 의결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사소한 금액이라도 지출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 헌법상 예산제도는 국회가 예산을 심사·확정하고 정부는 그것을 집행 과정에서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국회의 예산확정권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예산권한이 국회와 정부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을 갖게 된다.

그러나 헌법상의 예산제도 취지와 다르게 제헌 이후 예산관계법이 제정되면서 헌법에 근거하지 않는 정부 편의적인 수단들이 대거 도입됨에 따라 국회와 정부 사이의 예산권한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전용과 사고이월 등이 도입된 게 대표적이다. 따라서 국회와 정부 사이의 예산권한 균형을 위하여 예산 집행 단계에서 정부의 편의성 제고에 상응하여 국회에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자율적인 조정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헌법 제57조와 달리 편의적 예산집행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세항과 세세항에 대해서는 국회에 예산심사에서 감액한 예산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헌법 개정 없이 헌법 재해석으로 충분하다. 헌법에서 국회가 정부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때는 예산안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때인데, 이 방안은 국회가 각항의 금액을 증가할 때 여전히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헌법에 배치되지 않는다. 다만, 헌법 규정의 ‘새 비목’에서 비목의 단위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가 중요한데, 정부가 매년 제출하는 예산안과 국회가 확정하여 이송하는 예산에 항 단위까지만 적시하고 있는 점이나 국회에 자율적 예산조정권을 실질적으로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역시 항 단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산은 정책이고 정책은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회의 입법권은 크게 신장되어 지금은 국회가 국가의 정책을 입법을 통해 결정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재정의 비중과 역할을 고려할 때 예산의 뒷받침 없는 정책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법규정이 사문화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국회의 입법권마저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회에 예산조정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 제57조의 취지는 국민의 세부담 증가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지 국회의 예산조정권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의회가 예산조정권을 갖고 있다. 국회에 예산조정권이 주어지면 국회는 정부 예산편성권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고 각 부처 등으로부터 편성 요구가 있었으나 기획재정부가 편성하지 않은 사업과 예산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회와 정부 사이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고 국회가 재정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길이다. 또한 현행 권력구조에 대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있는데, 현행 헌법으로 대선이 실시되더라도 국회에 예산조정권을 인정하면 그러한 비판을 상당한 정도 해소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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