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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23 17:36 수정 : 2017.01.23 20:47

우수근
중국 둥화대학교 교수

국제 사회에서는 21세기 초에 ‘9·11 쇼크’와 ‘11·9 쇼크’라는 2개의 충격이 발생했다는 말이 있다. 전자는 9·11 테러를, 후자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의미한다. 이렇게 묘사될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과 국제 사회는 2차 대전 이후의 기존 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격변기를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은 미증유의 패닉 상황을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먼저 일본. 일본은 “아라마”(あらま) 상태로 맞이하고 있다. 일본어 “아라마”란 “아이고”란 뜻으로 “아라마, 큰일 났네!” 혹은 “아라마, 어쩌면 좋지?”라는 식으로도 사용된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어찌할지 모를 때 사용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과의 동맹 관계 속에서 안보나 군사력 등은 신경쓰지 않은 채 경제발전에 주력하여 성장했던 일본으로선 국가의 생존이라는 근간부터 리셋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는 “미·일 관계 유지론”과 “자주국방 추진론”, 아시아 각국과의 우호 속에서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한다는 “제3의 길 추구론” 등이 주창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음으로 중국. 중국은 “하오바”(好吧)의 상태로 맞이하고 있다 할 것이다. 중국어 “하오바”란 “알았어!” 혹은 “좋았어!”라는 뜻으로 “하오바, 그렇게 하자!”라는 식으로 사용된다. 즉, 어떠한 일에 대해 수긍하거나 나쁘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현재 중국은 민주·인권·법치 등을 거론하며 자신들을 비난해온 기존의 미국 정권들과는 달리 경제에 주력하고자 하는 트럼프 정권을 비교적 여유롭게 맞이하는 모양새다. 물론 트럼프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행위” 등을 비난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샅바싸움 등을 면할 수 없으리라 대비하고는 있다. 하지만 미·중 양국의 제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불리하지는 않다는 복심이 깔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먼로주의로의 회귀 조짐을 보이는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엔 국제사회에서 위상 강화를 위해 놓쳐서는 안 되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실제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가운데는 벌써부터 중국이나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 등으로 다가서고자 은밀히 접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중국은 대만 문제 등을 들고나오는 트럼프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하오바,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고!”라는 자세로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외국에서 바라본 우리는 이 격변기를 그야말로 대책 없는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독도 될 수 있고 약도 될 수 있는” 극약 처방으로 국가의 쇠락을 막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미국, 여유로움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무엇이 언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몰라 긴장하는 중국, 이들을 바라보며 전면적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일본. 국제 사회의 최강자인 이들조차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판 깔기에 여념이 없거늘 우리는 어떤가? ‘박순실’의 질곡에 넋을 뺏긴 채 헤매고만 있지 않은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고려 및 조선시대만 해도 우리는 주변 강국에 침략받고 식민지배조차 당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외침은 끊임없었는데 하물며 분단된 지금의 국가안보는 얼마나 더 위험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현재 밖에서는 국가의 존망에 직결될 일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는데 안에서는 대통령부터 국민을 더 분열시키며 국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금언이 뇌리에서 점차 더 강하게 각인되어오는 것은 나만의 부질없는 노파심만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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