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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9 18:29 수정 : 2017.01.09 20:24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부경대 교수

민심을 거스르던 정치는 결국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를 부르고 말았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라고 부른다. 이런 국정 농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또 박근혜가 최순실의 ‘아바타’였다고 한다. 촛불 민심에 귀기울여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탄핵 정국에서 온 국민이 나랏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평소에 낯설고 어려운 정치와 법률 용어를 많이 듣게 된다. 말이 굳이 이렇게 어려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탄핵’도 어려운 낱말이다. ‘농단’이란 말을 추문이나 스캔들로 바꾸면 안 될까. ‘농단’은 <맹자>에서 유래한 말인데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이다. 본디는 상업에서 유래하였다. ‘아바타’란 말은 ‘꼭두각시, 괴뢰’로 바꾸어 쓰면 좋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처음에는 퍽 낯설었다. ‘가결’ 또는 ‘지지’가 더 좋을 것이다. 영어로는 ‘업홀드’(uphold)로 표현하고 있다. 영어에서는 아주 기본적이고 자주 쓰이는 말로 이루어진 쉬운 말이다. 동아시아권 나라들에서는 서구어를 번역할 때 필요없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을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는 ‘프리자이드’(preside. 회의를 주재하다)로부터 유래된 용어로서 ‘여러 가지 단체의 장(長)’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일본인들이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던 ‘통령’이라는 용어에 ‘큰 대(大)’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최소한 186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나 쓰였다. 당시 미국이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시민혁명을 거쳐 유럽과 달리 신대륙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자긍심을 가졌던 미국으로서 권위적이고 민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나 ‘왕’이라는 용어를 가름하기 위한 의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낱말이 ‘대통령, 총재, 총장’ 등으로 번역되면서 강력한 지배와 통솔의 의미를 연상시키기 쉽다. 미국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려던 원래의 뜻은 간데없고 명령하는 자 힘센 자의 의미만 두드러진다.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오염된 번역어라 할 수 있다. 영어로 보살피는 사람,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는 ‘미니스터’(minister)도 동아시아 정치 맥락에서 매우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은 ‘장관’이란 용어로 탈바꿈하였다. 한자로 새말을 지어 쓰는 한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말들을 자주 쓰이는 낱말에 가깝게 다듬으면 훨씬 쉬운 말이 될 수 있다. 공연히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한자말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낯선 외국어도 스스럼없이 들여온다. 정치인들은 툭하면 ‘워딩, 스탠스, 포지셔닝’ 등 필요없는 영어를 써 유식함을 자랑한다. 참민주주의 시대에는 쉬운 글자 한글과 더불어 쉬운 말 쓰기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머지않아 헌법 개정 논의도 하리라 예상된다. 민주 시민이라면 헌법을 많이 알아야 한다. 출판물이 한글로만 나오는 것이 큰 흐름이지만 이런 흐름에 유독 뒤처진 분야가 법률 서적일 것이다. 일본법의 영향으로 한자말 일본식 표현투성이로 알려지고 있다. 법제처에서 법률용어 한글화 사업을 펴고 있어 나름대로 성과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쉬운 우리말로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모든 법률의 조문을 다시 써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됩니다.’(이오덕 지음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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