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2.05 18:10 수정 : 2016.12.05 19:23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민주주의는 인간 본성에 기원을 둔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날카로운 이빨 없이 살아남은 우리 조상들은, 강력한 공동체의 규칙을 만들며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그 흔적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우리 두뇌는 그 형질들을 탑재한 채 태어난다. 왕의 시대를 거쳐 민주주의로, 다시 지역공동체로 발전해 가는 인류의 모습은, 유전자 속 깊이 새겨진 그 본능을 찾아가는 여정일 뿐이다.

인간만이 아니다. 민주의 흔적은 유인원에게도 있다. 민주주의 유지에 필수적인 ‘평등’의 관념이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카푸친원숭이 두 마리에게 간단한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이 중 한 마리만 더 좋은 보상을 해줄 경우, 푸대접을 받은 원숭이는 처음엔 임무 불이행으로, 나중엔 받은 보상을 실험자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맞선다. 태업 이후 파업이다. 유인원에게도 ‘평등’에 대한 관념이 있고, 불평등이 지속될 경우 처음엔 ‘불복종’으로, 그리고 서서히 ‘분노’라는 방식으로 ‘정의’가 표출된다. 도덕성은 인간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유인원의 삶도 윤리적이다.

인간은 유인원 속에서도 독특한 종이다.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고, 국가라는 단위로 공동체를 구성한 것도 모자라 이제 인류공동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무언가 독특한 형질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기저에는 집단선택을 통해 최근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성’에 대한 유전형질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기원일지 모른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봄(Boehm)은 <숲속의 위계질서>라는 책을 통해 그 단면을 알려준다. 그는 50여개의 수렵채집 문화를 분석해, 우리 조상들은 수직적인 위계구조로부터 평등한 사회로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를 통해 진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 시기는 약 25만년 전, 즉 일만 세대 전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이때 인류의 공동사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냥의 성공률은 매우 낮았고, 그런 상황은 이득과 위험 모두를 나누는 사회적 보험제도를 진화시켰다. 그렇게 잘 나누는 집단, 즉 평등한 집단이 선택되어 현대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공유하는 규칙들이 있다. 성공적인 수렵채취 사회일수록 이기주의, 족벌주의, 편파주의가 강력하게 금지된다. 강력한 우두머리의 존재는 성공적인 씨족사회의 필수조건이자 위험요소다. 위험한 환경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우두머리가 필요하지만, 그런 권력은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렵채취 사회는 그런 독재에 저항하는 장치를 발전시켰는데, 이를 ‘역지배’라 부른다. 역지배는 약자들이 연대해 우두머리를 제어하는 장치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가장 손쉬운 역지배의 도구는 여론이다. 소문을 퍼뜨리고, 많은 이들이 지배자에 대해 떠들게 만드는 행위는 그렇게 진화했다. 뒷담화다. 이 과정은 비판과 조롱을 수반한다. 풍자와 해학이다. 때로는 지배자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행위가 이어지기도 하고, 만약 이런 온건한 행위들로 역지배가 달성되지 않을 경우, 따돌림이 이어지며,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 지배자는 공동체의 분노 수준에 따라 때로는 추방당하며, 가끔은 암살당한다. 예를 들어 ‘쿵’ 족에겐 매우 호전적이고 고집불통인 지배자를 몰래 죽이는 풍속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 사람들이 섰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지배자를 역지배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독재를 거부하는 본능에 따라 그곳에 섰다. 탄핵은 본능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긴다. 질 수가 없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