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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5 18:10 수정 : 2016.12.05 19:24

이종현
가천대 경영학 교수

탄핵 논의의 혼선에 가려 초점에서 벗어나 있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에 치명적인 사안 중 하나가 정권과 삼성이 국민연금을 사유화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데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실을 부담시키면서 삼성가에 유리한 결정이 나도록 이들이 작당을 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친 책임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작당인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청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적정 합병비율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국민연금의 손실액은 차이가 나는데 적게 잡아도 약 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삼성가가 얻은 이득은 적어도 37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합병 뒤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은 지난달 20일 기준 5800여억원의 평가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 거래이지만, 그러나 이 추정액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이득(편익)과 손실(비용)이 극단적으로 과소 계상됐다. 삼성은 금전적 이득 외에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막대한 편익을 얻었다. 삼성물산 주식이 없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합병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6.5%)가 됐다. 더불어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4.1%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0.57%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지배력의 강화다. 3700억원은 오히려 부수입에 가깝다. 기간 제한도 없고 범위도 국한되지 않는 무한 권력을 삼성가는 획득했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치러야 할 비용은 계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공적 연금의 근간이고 복지 제도의 핵심이다. 2천만 이상의 서민과 중산층이 낸 돈으로 구성돼 있고 이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보루다. 국민 대다수가 관계자이기 때문에 이 제도는 엄정한 공정성과 그에 대한 신뢰 없이는 존립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몇 차례의 연금 파동에서 보았듯이 신뢰에 조금만 의문이 가도 국가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비화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며 한푼 두푼 모은 국민의 돈을 뭉텅 재벌에게 넘겼다. 그것으로 재벌의 구멍 난 성벽을 막아주었다. 반대로 돈과 함께 신뢰의 주춧돌이 빠져나간 국민연금은 불신의 위기를 맞게 됐다. 재벌집의 보수공사에 쓰기 위해 ‘국민의 집’의 기반을 허물어버린 셈이 됐다.

55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의 적립금 규모에 비하면 현재 발생한 재무적 손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뢰의 초석이 빠진 국민연금은 앞으로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뢰 기반이 없는 거래는 막대한 거래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거래를 하게 될 때 당사자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따져보아야 한다. 한두번 두드리고 건널 돌다리를 열번, 스무번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많은 당사자들은 결국 돌다리로 건너가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거래비용 이론이 지적하는 실패하는 경제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참여자가 많은 거래일수록 불신에 의한 거래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민연금이 여기에 해당한다. 2천만이 넘는 거래 당사자들이 노후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모으고 있는 돈이 국민연금이다.

이 불신의 비용이 어떻게 복구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이들의 음습한 작당은 드러난 손실로 설명할 수 없는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이다. 신뢰 없이 유지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그들은 팔아먹었다. 그들은 너무나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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