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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1 18:33 수정 : 2016.11.21 19:06

박규환
영산대 헌법학 교수

오랜 기간 전제왕권에 신음하던 백성들은 그들이 경험했던 고통을 헌법이라는 형태를 통해 제거하였다. 왕의 의지에 따라 형벌이 부과되던 관행에 대해서는 죄형법정주의를, 왕실 수요에 따라 부과되던 세금에 대해서는 조세법률주의를 통해 그 자의적 결정을 제한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은 근대헌법국가에서 법치주의 원리로 정착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법치주의 원리를 나치 정권이 악용하여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독일의 헌법학자들은 법만 있으면 그에 따른 집행이 정당하다는 기존의 법치주의를 ‘형식적 법치주의’로 명명하면서 법의 내용 또한 정당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현재 민주주의와 더불어 우리 헌법의 또 다른 큰 한 축을 이루는 법치주의는 형식뿐 아니라 그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요즘 시국으로 인해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논의의 흐름을 보면 큰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헌법에 대한 한 축인 법치주의‘만’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없는 ‘법치주의’는 독재를 의미한다. 조선 왕조 시대에도 법치는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권력이 왕에게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법치주의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만이 법치주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왜곡되거나 파괴된 경우 법치주의가 의미 없다는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의 비극은 외국에선 독일의 나치정권, 국내에서는 유신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아쉽게도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 원리가 헌법의 수호 의무를 가진 대통령에 의해, 법치주의라는 도구를 가지고 파괴되는 것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모두 법관으로 임명하도록 한 것에서 나타난다. 단지 법치주의 원리가 침해된 사건의 판단과는 다른 차원인,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를 통해 파괴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이 직접 권력을 위임하지 않은 법관 출신의 재판관들만으로 사안을 판단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정치 영역인 민주주의 원리가 왜곡되거나 파괴되었는지를 판단함에는 민의의 수렴이 상당한 정도로 반영되어야 하는데 법관은 기본적으로 법리적 판단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이유로 제헌헌법의 탄핵재판소는 부통령, 대법관 5인 그리고 국회의원 5인으로 구성하였다.

헌법제정권력자인 국민은 지금 명확한 요구를 반복해서 표출하고 있다. 각종 법리를 검토해 질서있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치주의에 지나치게 몰입해 민주주의를 놓친다면 헌법은 형해화된다. 더군다나 역사적 고통과 희생을 통해 쟁취한 법치주의를 행여 자신의 치부를 덮는 방패로 사용하려 한다면 헌법적 판단을 함에 있어서 민주주의 원리가 법치주의 원리보다 실제적으로 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결국 상술한 현행 제도의 흠결로 말미암아 현 시국을 안정화시킬 ‘헌법의 최종 수호자’ 역할이 다시 국민에게 부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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