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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7 18:09 수정 : 2016.11.07 19:03

류재명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각하, 제가 문제 하나 내보겠습니다. 진짜로 있었던 사실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냥 심심풀이로 만들어본 가상적 상황 문제입니다. 박보검이란 스타가 인터넷 쇼핑으로 똑같은 스웨터 두 벌을 구매했습니다. 그는 그중 한 벌을 골라 한 번 입고 나서 세탁도 하지 않고 옷장에 두었습니다. 어느 날 한 자선단체에서 그를 찾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기증해 달라” 하여 그는 스웨터 두 벌을 내놓습니다. 자선단체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스웨터 두 벌의 사진을 나란히 올렸습니다. 하루 입었다는 스웨터 사진 아래에는 “박보검씨로부터 기증받은 스웨터로, 그가 한 번 입었지만 세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라는 설명 문장을 적고, 다른 스웨터 사진 아래에는 “박보검씨로부터 기증받은 동일한 스웨터로, 그가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 그대로라고 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각하께서는 두 벌 중 어느 스웨터가 경매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려나갈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저 같으면 박보검씨가 한 번 입었던 헌 스웨터보다는 새 스웨터를 더 선호할 것 같은데 제가 읽은 폴 블룸의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타가 입었던 옷을 더 갖고 싶어하며 당연히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치르려 한다고 합니다. 물론 각하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각하가 한 번 들고 나갔다 하면, 그 가방뿐만 아니라 그 가방을 만드는 기업의 다른 상품들의 인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각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하고 다니면서 자신이 마치 무슨 대단한 권력자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제가 접한 언론을 보면 현재 각하가 처한 문제는 각하가 감염주술적인 사고 경향이 강한 최순실씨 등 몇 사람을 가까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해결책이라는 게 그런 주술적인 몇 사람과의 관계를 끊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책에 의하면, “감염주술은 한 번 연결되면 나중에 서로 떨어져 있어도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것으로, 과학적 실험 연구 결과 현대인도 그런 주술에 곧잘 빠져든다고 합니다. 각하가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어떤 ‘합리적’인 말과 행동을 하셔도 이제 국민들은 각하의 말과 행동은 주술적인 그 무엇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보면 각하가 ‘진정성’을 보여주면 국민들의 마음이 곧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예상해 볼 수도 있지만, 한 번 믿음을 잃은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회복하는 일은 실로 요원한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하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각하는 아직 일 년 정도의 임기가 남았고 그 기간 내에 열심히 하면 각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미 상실한 리더십으로 인하여 허송세월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부디 용기를 내어 하루라도 빨리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각하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되시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에는 힘든 여건에서도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훌륭한 인물이 많다는 걸 국민이 잘 알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이제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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