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 신문방송학 교수 박근혜는 유신 독재에 의해 영혼이 길들여진 자입니다. 권력을 완전히 사유화한 그의 통치 행태는 독재자인 아버지에게 그대로 보고 배운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 순사였던 친일 경력의 사악한 주술사 최태민과 그 후계 주술사 최순실이 그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의존적인 인격입니다. 그는 아마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국가를 위해 공사를 막론하고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빌린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는데?’라고 여길 것입니다. 박근혜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는 반성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의식이 없는 소시오패스와 유사한 거 같습니다. 독립적 판단능력-반성능력-도덕의식은 모두 연계되어 있거든요. 이런 자가 국가 최고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주변의 이정현, 김기춘 같은 자들도 인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위험한 자들입니다. 이정현의 평소 언동과 특히 박근혜의 이른바 사과 발표 후 ‘누구나 주변의 의견을 묻는다’는 말은 그의 판단력과 도덕의식이 정상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김기춘의 경우 박정희 때 이미 길들여진 자이고 박근혜를 길들인 자이기도 합니다. 영화 <자백>에서 그의 간첩 조작 관여 행위를 추궁하는 최승호 감독에 대한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반응이 인격적 장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영화에서 원세훈이나 간첩 조작 증거 위조에 관여한 검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인격장애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나라는 이런 위험한 인격장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위험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이 권력의 자리에 쉽사리 접근하게 된 사회 조건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버렸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일제 강점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등 과거사에 대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철저한 반성(과거 대면과 극복)이 이뤄지지 못했던 점, 그리고 박정희 시대 이후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 시스템이 이런 인간형의 양산을 불러왔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주의 교육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 교육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인간이 아닌 순종형 인간을 미화했습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출세할 수도 있으니까요. ‘생존’과 ‘출세’가 과거의 친일독재 교육과 지금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이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획일성’입니다. 획일주의는 비판능력을 가진 인격의 양성을 배제한 교육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전체주의와 직결됩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기본적으로 분단(북의 위협)을 핑계로 ‘병영국가’를 구축하고 개발독재를 추구했습니다. 박근혜의 인격 형성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 시대에 교복자율화, 통금폐지, 프로야구 도입, 88올림픽 등을 실행,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대중들로 하여금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광주학살을 망각하도록 하기 위한 기만적인 사회·문화정책이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과거 독재자 또는 독재의 협력자들은 정권 창출, 또는 정치적 화합의 이름으로 쉽게 용서받았습니다. 단지 쉽게 용서받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반성을 구조화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과 분단을 이용한 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 생존경쟁이 만든 ‘복합 수용소 사회’, 즉 ‘헬조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박근혜 국정파탄 게이트’를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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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근혜의 인격장애와 헬조선 / 은우근 |
은우근
광주대 신문방송학 교수 박근혜는 유신 독재에 의해 영혼이 길들여진 자입니다. 권력을 완전히 사유화한 그의 통치 행태는 독재자인 아버지에게 그대로 보고 배운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 순사였던 친일 경력의 사악한 주술사 최태민과 그 후계 주술사 최순실이 그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의존적인 인격입니다. 그는 아마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국가를 위해 공사를 막론하고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빌린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는데?’라고 여길 것입니다. 박근혜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는 반성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의식이 없는 소시오패스와 유사한 거 같습니다. 독립적 판단능력-반성능력-도덕의식은 모두 연계되어 있거든요. 이런 자가 국가 최고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주변의 이정현, 김기춘 같은 자들도 인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위험한 자들입니다. 이정현의 평소 언동과 특히 박근혜의 이른바 사과 발표 후 ‘누구나 주변의 의견을 묻는다’는 말은 그의 판단력과 도덕의식이 정상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김기춘의 경우 박정희 때 이미 길들여진 자이고 박근혜를 길들인 자이기도 합니다. 영화 <자백>에서 그의 간첩 조작 관여 행위를 추궁하는 최승호 감독에 대한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반응이 인격적 장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영화에서 원세훈이나 간첩 조작 증거 위조에 관여한 검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인격장애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나라는 이런 위험한 인격장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위험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이 권력의 자리에 쉽사리 접근하게 된 사회 조건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버렸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일제 강점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등 과거사에 대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철저한 반성(과거 대면과 극복)이 이뤄지지 못했던 점, 그리고 박정희 시대 이후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 시스템이 이런 인간형의 양산을 불러왔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주의 교육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 교육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인간이 아닌 순종형 인간을 미화했습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출세할 수도 있으니까요. ‘생존’과 ‘출세’가 과거의 친일독재 교육과 지금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이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획일성’입니다. 획일주의는 비판능력을 가진 인격의 양성을 배제한 교육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전체주의와 직결됩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기본적으로 분단(북의 위협)을 핑계로 ‘병영국가’를 구축하고 개발독재를 추구했습니다. 박근혜의 인격 형성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 시대에 교복자율화, 통금폐지, 프로야구 도입, 88올림픽 등을 실행,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대중들로 하여금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광주학살을 망각하도록 하기 위한 기만적인 사회·문화정책이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과거 독재자 또는 독재의 협력자들은 정권 창출, 또는 정치적 화합의 이름으로 쉽게 용서받았습니다. 단지 쉽게 용서받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반성을 구조화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과 분단을 이용한 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 생존경쟁이 만든 ‘복합 수용소 사회’, 즉 ‘헬조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박근혜 국정파탄 게이트’를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대 신문방송학 교수 박근혜는 유신 독재에 의해 영혼이 길들여진 자입니다. 권력을 완전히 사유화한 그의 통치 행태는 독재자인 아버지에게 그대로 보고 배운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 순사였던 친일 경력의 사악한 주술사 최태민과 그 후계 주술사 최순실이 그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의존적인 인격입니다. 그는 아마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국가를 위해 공사를 막론하고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빌린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는데?’라고 여길 것입니다. 박근혜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는 반성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의식이 없는 소시오패스와 유사한 거 같습니다. 독립적 판단능력-반성능력-도덕의식은 모두 연계되어 있거든요. 이런 자가 국가 최고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주변의 이정현, 김기춘 같은 자들도 인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위험한 자들입니다. 이정현의 평소 언동과 특히 박근혜의 이른바 사과 발표 후 ‘누구나 주변의 의견을 묻는다’는 말은 그의 판단력과 도덕의식이 정상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김기춘의 경우 박정희 때 이미 길들여진 자이고 박근혜를 길들인 자이기도 합니다. 영화 <자백>에서 그의 간첩 조작 관여 행위를 추궁하는 최승호 감독에 대한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반응이 인격적 장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영화에서 원세훈이나 간첩 조작 증거 위조에 관여한 검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인격장애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나라는 이런 위험한 인격장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위험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이 권력의 자리에 쉽사리 접근하게 된 사회 조건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버렸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일제 강점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등 과거사에 대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철저한 반성(과거 대면과 극복)이 이뤄지지 못했던 점, 그리고 박정희 시대 이후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 시스템이 이런 인간형의 양산을 불러왔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주의 교육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 교육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인간이 아닌 순종형 인간을 미화했습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출세할 수도 있으니까요. ‘생존’과 ‘출세’가 과거의 친일독재 교육과 지금 학벌주의-입시몰입경쟁교육이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획일성’입니다. 획일주의는 비판능력을 가진 인격의 양성을 배제한 교육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전체주의와 직결됩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기본적으로 분단(북의 위협)을 핑계로 ‘병영국가’를 구축하고 개발독재를 추구했습니다. 박근혜의 인격 형성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 시대에 교복자율화, 통금폐지, 프로야구 도입, 88올림픽 등을 실행,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대중들로 하여금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광주학살을 망각하도록 하기 위한 기만적인 사회·문화정책이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과거 독재자 또는 독재의 협력자들은 정권 창출, 또는 정치적 화합의 이름으로 쉽게 용서받았습니다. 단지 쉽게 용서받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반성을 구조화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과 분단을 이용한 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 생존경쟁이 만든 ‘복합 수용소 사회’, 즉 ‘헬조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박근혜 국정파탄 게이트’를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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