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 “열차 오류 평가시스템이 있다는 건, 열차가 2분쯤 늦어지면 곧바로 통제실에서 기관사에게 무전을 보내 이유를 물어본다는 뜻입니다. 이건 그날 일과가 끝난 뒤 누가 벌금을 물어야 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겁니다.”(민영화된 영국 철도 GNER사 기관사) 영국 철도 기관사가 위에서 말한 벌금이 벌점으로 대체되어 기관사의 성과가 측정되고 다음해 연봉에 반영되는 게 ‘성과연봉제’다.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늦을 수 있다. 수백명의 병사들이 자대 배치를 받아 각 지역으로 이동할 때나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여행하는데 내리고 타는 시간도 제법 걸린다. 만약 열차운행 과정에 이상이 생겨 지연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정비 불량으로 차량정비팀에서 벌점을 받아야 하는지 선로 문제에 따른 시설팀의 책임인지 비상시 조치 지연으로 기관사나 여객전무가 문책을 받아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모든 관련자들은 제일 먼저 이 장애에 자기가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부터 따지게 된다. 경쟁이 협업 체제를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2005년 4월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들의 등굣길을 챙긴 나카무라 미치코는 출근하기 위해 오사카의 후쿠치야마선 전동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승객들로 가득 찬 출근길 전동차는 곡선 선로에 들어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열차가 약간 기우는 듯하더니 공중으로 솟구쳤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전동차 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107명이 희생됐다. 그는 다시는 남편과 아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7년 사고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과도한 수익 위주의 기업 체질과 노동자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환경”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사고 전동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왜 곡선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2분 때문이었다. 정시보다 2분 지연된 열차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곡선에서도 엔진 출력을 줄이지 않았다. 지연된 만큼 사유서를 쓰고 책임이 있을 경우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환경에서 기관사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오직 저성과자 낙인을 피하는 것이었다. 107명 희생자를 낸 제이아르(JR)서일본 소속의 하토리 기관사는 교토역에서 50초를 늦췄다고 재교육에 회부됐다. 하토리는 2001년 9월 자살했다. 회사의 굴욕적인 재교육을 못 견뎌 자살한 사람이 20명이나 됐다.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악명 높던 재교육은 멈췄다. 기관사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폭언도 사라졌다. 기관사들의 피로 호소에 꿈쩍도 하지 않던 회사가 1.5배의 인력을 충원했다. 회사 구성원에 대한 과도한 경쟁 압박이 큰 희생을 불러온 끝에 철회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공기업 개혁은 가뜩이나 불안한 위험사회인 한국 사회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쟁 환경을 만들어 성과를 낸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그럴듯한 명분은 현실에서는 그 사회의 부패 정도만큼 왜곡된다. 한국 사회의 청렴도나 비리, 민주주의 척도를 알 수 있는 언론자유 같은 지수들은 이 정부 출범 후 해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과 경쟁에 내몰리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담는 것은 시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복불복 정신이다. 이런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전쟁터다. 철도의 최고 가치는 안전이다. 어떤 정책이든 이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공기업이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성과연봉제가 과연 정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던 것을 되돌리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철도 노사가 마주앉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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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성과연봉제, 경쟁은 고래도 숨 막히게 한다 / 박흥수 |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 “열차 오류 평가시스템이 있다는 건, 열차가 2분쯤 늦어지면 곧바로 통제실에서 기관사에게 무전을 보내 이유를 물어본다는 뜻입니다. 이건 그날 일과가 끝난 뒤 누가 벌금을 물어야 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겁니다.”(민영화된 영국 철도 GNER사 기관사) 영국 철도 기관사가 위에서 말한 벌금이 벌점으로 대체되어 기관사의 성과가 측정되고 다음해 연봉에 반영되는 게 ‘성과연봉제’다.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늦을 수 있다. 수백명의 병사들이 자대 배치를 받아 각 지역으로 이동할 때나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여행하는데 내리고 타는 시간도 제법 걸린다. 만약 열차운행 과정에 이상이 생겨 지연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정비 불량으로 차량정비팀에서 벌점을 받아야 하는지 선로 문제에 따른 시설팀의 책임인지 비상시 조치 지연으로 기관사나 여객전무가 문책을 받아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모든 관련자들은 제일 먼저 이 장애에 자기가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부터 따지게 된다. 경쟁이 협업 체제를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2005년 4월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들의 등굣길을 챙긴 나카무라 미치코는 출근하기 위해 오사카의 후쿠치야마선 전동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승객들로 가득 찬 출근길 전동차는 곡선 선로에 들어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열차가 약간 기우는 듯하더니 공중으로 솟구쳤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전동차 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107명이 희생됐다. 그는 다시는 남편과 아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7년 사고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과도한 수익 위주의 기업 체질과 노동자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환경”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사고 전동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왜 곡선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2분 때문이었다. 정시보다 2분 지연된 열차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곡선에서도 엔진 출력을 줄이지 않았다. 지연된 만큼 사유서를 쓰고 책임이 있을 경우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환경에서 기관사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오직 저성과자 낙인을 피하는 것이었다. 107명 희생자를 낸 제이아르(JR)서일본 소속의 하토리 기관사는 교토역에서 50초를 늦췄다고 재교육에 회부됐다. 하토리는 2001년 9월 자살했다. 회사의 굴욕적인 재교육을 못 견뎌 자살한 사람이 20명이나 됐다.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악명 높던 재교육은 멈췄다. 기관사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폭언도 사라졌다. 기관사들의 피로 호소에 꿈쩍도 하지 않던 회사가 1.5배의 인력을 충원했다. 회사 구성원에 대한 과도한 경쟁 압박이 큰 희생을 불러온 끝에 철회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공기업 개혁은 가뜩이나 불안한 위험사회인 한국 사회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쟁 환경을 만들어 성과를 낸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그럴듯한 명분은 현실에서는 그 사회의 부패 정도만큼 왜곡된다. 한국 사회의 청렴도나 비리, 민주주의 척도를 알 수 있는 언론자유 같은 지수들은 이 정부 출범 후 해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과 경쟁에 내몰리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담는 것은 시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복불복 정신이다. 이런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전쟁터다. 철도의 최고 가치는 안전이다. 어떤 정책이든 이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공기업이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성과연봉제가 과연 정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던 것을 되돌리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철도 노사가 마주앉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 “열차 오류 평가시스템이 있다는 건, 열차가 2분쯤 늦어지면 곧바로 통제실에서 기관사에게 무전을 보내 이유를 물어본다는 뜻입니다. 이건 그날 일과가 끝난 뒤 누가 벌금을 물어야 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겁니다.”(민영화된 영국 철도 GNER사 기관사) 영국 철도 기관사가 위에서 말한 벌금이 벌점으로 대체되어 기관사의 성과가 측정되고 다음해 연봉에 반영되는 게 ‘성과연봉제’다.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늦을 수 있다. 수백명의 병사들이 자대 배치를 받아 각 지역으로 이동할 때나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여행하는데 내리고 타는 시간도 제법 걸린다. 만약 열차운행 과정에 이상이 생겨 지연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정비 불량으로 차량정비팀에서 벌점을 받아야 하는지 선로 문제에 따른 시설팀의 책임인지 비상시 조치 지연으로 기관사나 여객전무가 문책을 받아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모든 관련자들은 제일 먼저 이 장애에 자기가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부터 따지게 된다. 경쟁이 협업 체제를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2005년 4월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들의 등굣길을 챙긴 나카무라 미치코는 출근하기 위해 오사카의 후쿠치야마선 전동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승객들로 가득 찬 출근길 전동차는 곡선 선로에 들어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열차가 약간 기우는 듯하더니 공중으로 솟구쳤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전동차 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107명이 희생됐다. 그는 다시는 남편과 아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7년 사고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과도한 수익 위주의 기업 체질과 노동자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환경”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사고 전동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왜 곡선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2분 때문이었다. 정시보다 2분 지연된 열차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곡선에서도 엔진 출력을 줄이지 않았다. 지연된 만큼 사유서를 쓰고 책임이 있을 경우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환경에서 기관사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오직 저성과자 낙인을 피하는 것이었다. 107명 희생자를 낸 제이아르(JR)서일본 소속의 하토리 기관사는 교토역에서 50초를 늦췄다고 재교육에 회부됐다. 하토리는 2001년 9월 자살했다. 회사의 굴욕적인 재교육을 못 견뎌 자살한 사람이 20명이나 됐다.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악명 높던 재교육은 멈췄다. 기관사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폭언도 사라졌다. 기관사들의 피로 호소에 꿈쩍도 하지 않던 회사가 1.5배의 인력을 충원했다. 회사 구성원에 대한 과도한 경쟁 압박이 큰 희생을 불러온 끝에 철회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공기업 개혁은 가뜩이나 불안한 위험사회인 한국 사회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쟁 환경을 만들어 성과를 낸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그럴듯한 명분은 현실에서는 그 사회의 부패 정도만큼 왜곡된다. 한국 사회의 청렴도나 비리, 민주주의 척도를 알 수 있는 언론자유 같은 지수들은 이 정부 출범 후 해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과 경쟁에 내몰리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담는 것은 시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복불복 정신이다. 이런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전쟁터다. 철도의 최고 가치는 안전이다. 어떤 정책이든 이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공기업이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성과연봉제가 과연 정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던 것을 되돌리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철도 노사가 마주앉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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