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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0 18:29 수정 : 2016.10.10 18:57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그레이트 콤프레션’(대압착)을 주장하였다. 심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이 ‘그레이트 콤프레션’은 3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노동시장의 최고-최저임금 연동제다. 둘째, 대기업-중소기업의 초과이익공유제다. 셋째, 노동시장 밖의 아동-청년-노인 기본소득제다. 임금격차의 압착이요, 이윤격차의 압착이요, 소득격차의 압착이 되겠다. 심 대표의 연설에 나타난 기본적인 취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이 멋지게 포장된 ‘패키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그레이트 콤프레션’이란 개념을 보자. 이 개념은 1929년에 ‘그레이트 디프레션’(대공황)이 일어나고 뉴딜 정책이 실시된 이후, 미국에서 임금과 소득의 불평등이 이례적으로 줄어들었던 1940년대 시기를 가리킨다. ‘그레이트 디프레션’과 라임(각운)이 일치하도록 1992년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저 유명한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이 압착의 시기가 1970년대에 끝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서 극심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시대가 재연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를 폴 크루그먼은 ‘그레이트 다이버전스’(대분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1940~60년대의 시기에 불평등을 완화한 거대한 힘은 무엇이었으며, 1980년 이후 왜 불평등은 전례 없이 커졌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첫째, 고율의 누진세다. 2차 대전기에 최고세율은 94%에 달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지난 1962년에 최고세율은 92%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조세를 건드리지 않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최고세율이 35%대에 불과하다.)

둘째, 전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과잉 생산, 불완전 고용, 총수요 부족 등 모든 경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또한 2차 대전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여 그 존속에 의문을 던져주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자본에 대한 다양한 통제와 자본 측의 양보가 가능했다.

셋째, 강력한 노동운동의 존재와 세계사회주의 체제의 위협이다. 40~60년대는 어느 체제가 ‘보통사람’이 더 잘 사는 체제인가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부 계층이 독식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미국과 유럽에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한 ‘그레이트 콤프레션’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가능했다.

1930년대 대공황을 이겨낸 외침이 2016년 한국 국회에서 울려 퍼졌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세 개의 조건 중 그 어느 것도 지금 한국에는 없다. 심 대표의 국회 발언에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강력한 누진세를 포함한 조세체제 개혁과 상위층의 부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최고임금제'를 받아들여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묵묵부답이었던 ‘기본소득'에 대한 수용은 정말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전 국민이 아니라 노인, 청년, 아동 기본소득만을 먼저 실시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 증세 혹은 금융개혁을 말하지 않는 기본소득은, 이미 실시되고 있는 기초연금, 양육수당·보육료 지원 등을 이름만 바꿔 단 것으로 귀결되기 쉽다. 물론 공약대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노인 기초연금 공약을 제시할 때에도, 재원의 40%는 ‘세수 확대’를 통해서 조달하겠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거대한 불평등 체제를 바꾸는 사회적 힘을 전제하지 않는 ‘대압착’은 알맹이 없는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심 대표는 합법적인 원내정당의 대표이므로 그 이상을 말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하지 못한 말들을 원외에 있는 국민 모두가 함께 외쳐 주어야 할 것인가? 불평등 체제를 해소하고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대한 사회적 압력을 그의 두 어깨에 얹어 주어야 할 것인가? 그러면 그는 앞장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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